본문 바로가기
취미/책

[책 후기] 스몰 자이언츠가 온다(feat. 사랑)

by Quantum_H 2024. 4. 14.

 올해 2월, 동생의 남자친구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하면서 선물을 해주었다. 다른 책 읽을거리도 많았지만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제목은 '스몰 자이언츠가 온다'이다. 처음 이 책의 제목과 표지를 봤을 때 무슨 책인지 감이 도저히 잡히지 않았다. "스몰 자이언츠? 작은 거인? 이게 무슨 말이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윗 같은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가? 책을 읽기 전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며 책의 표지를 넘겼다.

 인터넷이 그리고 요즘은 AI 봇들이 책 줄거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기 때문에 줄거리를 이 글에선 쓰지 않으려고 한다. 궁금한 분들은 책을 읽어보시거나 아니면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길!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성공우선주의'를 깨부수는 강인하고 튼튼한 '낭만'있는 기업들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 세상은 엄청난 발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성공', '성과', '결과', '성장'이라는 단어의 특별한 구분 없이 차안대를 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기업들은 그런 기업이 아니었다. 회사가 커지는 것을 오히려 막았고 또 의도적으로 축소했다. 상장을 하면 더 큰 회사가 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그들은 현재에 만족하며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장을 하게 되면 이사회도 생기고 주주들의 입김을 받게 되면서 회사 운영이 기존과 달라질 수 있어, 기업 사장 자신의 뜻대로 회사 운영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 책에 나온 회사들이 '성장'과 '성과'를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정도만 생각했다.

 누군가 이를 보고 '겁쟁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면에서 성공을 하고 있다는 것은 어떠한 면에선 실패를 하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모두를 갖겠다는 것은 욕심이다. 지금이 성공과 성장의 사회인 이유는 지금 세계의 기조가 성공과 성장 우선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이다. 300년 전만 해도 조선 사람들의 사회 풍조가 성장과 성공에 지금까지 집착하는 사회였을까? 내 말은 원래부터 성공과 성장이 당연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 글에선 성장과 성공의 구분을 거의 하지 않고 썼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 둘은 전혀 다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는 성장은 '성공을 위한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비단 현재 테크 기업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 사람들만 둘러봐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에 대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나의 성장, 행복, 성공만을 원할 때가 있었다. 우선 나 먼저 여유를 갖고 남을 도와주든 혹은 나만 잘 살든, 그때 가서 생각하자고 속으로 다짐하며 앞만을 향해 나가려고 했었던 때가 있다. 지금도 나의 성공과 성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또 삶엔 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일론 머스크는 정말 뛰어나고 천재적 능력을 지닌 사업가라고 생각한다. 무슨 사업을 하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약간 있다. 화성에 가서 인간이 다행성인종이 되는 일은 정말 멋지지만 현재 그 사업엔 상상도 못 할 돈이 들어가고 있다. 솔라시티, 테슬라 등 태양광 사업, 전기차 사업을 통해 지구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지만(사실 전기차의 전기나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도 그리 친환경적이진 않다.) 이 지구엔 더 큰 문제들이 많다. 아프리카 기아문제, 국가 혹은 인종 간 차별문제, 다양한 생명(동식물) 문제 등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곳엔 투자자들의 돈이 쏠리지 않기에 이와 관련된 사업을 하려면 자선사업가로 돌아서야 할 수도 있다. 화성을 가는 것에 대해 멋있어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러한 것을 '성장' 혹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다.
 기업의 근로자가 많아질수록, 기업의 매장이 확장되고 더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갈수록, 증권시장에 상장되거나 투자를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성장'과 '성공'을 하는 것이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성장'이 누구를 위한 성장일까에 대한 고민은 새롭게 해 봐야 한다. '스몰 자이언츠' 기업은 적당한 수준에서 적당한 매출, 적당한 규모의 크기, 적당한 지역 사회적 관계, 적당한 가족 간의 관계, 적당한 환경보호 이 모든 것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이다.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내가 잘나고 싶어서 기존의 소중한 관계를 버리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사람들을 챙기며 '함께' 나아가려 한다. 기업이 힘들거나 상황에 따라 직원을 소모품처럼 버리거나 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더 집중을 한다. 어떻게 보면 '초심'을 지키기 위해 대기업보다 더 큰 결심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화장실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다른 것이 아닌, 회사가 커져도 직원들을 더 챙겨주고(심지어 몇 백 명 직원들의 이름을 외우고) 지역 사회에 공헌한다. 내 회사가 커졌다 해서 내 주변 내 이웃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그들에게 더 잘해주려고 누구보다 노력하는 '스몰 자이언츠'는 인생의 참된 가치를 아는 기업들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물질적 혹은 경제적 성장과 성공을 향한 발걸음을 의도적으로 늦추면서 더 중요한 가치를 찾아 나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AI가 화두가 되고 이 세상을 들끓게 하고 모든 투자가 그곳으로 쏠리고 있는 시점에 우리는 인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나도 한때 나의 경험, 나의 능력, 나의 성공, 나의 성장을 바란 사람으로서 남들보다 더 잘해야 했고 또 앞서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 몇십 년 아니 몇 년 안에 대부분의 직업에서의 능력치는 인간보다 AI가 더 뛰어나질 것이다. 그럼 당신이 당신보다 능력이 덜한 경쟁자를 이기고 그 자리에 앉은 것처럼 당신보다 더 뛰어난 AI가 당신을 대체한다 해도 괜찮겠는가? 파업이든 1인 시위를 할 것인가? 에이 설마. 언젠가 우리는 노동의 효율성 그리고 능력 측면에서 AI에게 따라 잡힐 것임은 분명하다. 나는 이러한 시대가 오기에 앞서 과연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가에 대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지성 성장과 성공만을 바라는 사람들 말이다.

칼세이건

 칼 세이건의 글에서처럼 우리처럼 작은 존재가 이 (우주의) 광대함을 견디는 방법은 오직 '사랑'뿐이다. 우리는 주변 이웃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감사함과 소중함을 더더욱 느껴야 한다. 본인의 성공은 본인의 노력만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성장마저도. 나는 지금도 많은 분들에게 특히 감사함을 느끼지만 (영악하게도) 내가 힘들 때 도와줬던 사람들에게 더더욱 감사하고 애정을 느낀다. 또한 상대방이 여유가 없어 보임에도 불구하고 주변 사람을 챙겨주려 할 때 그곳에서 존경과 사랑을 느낀다. 사실 내 기준이 너무 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본인이 여유가 없는데 누가 누구를 챙겨?"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위해 본인들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 있는 부모님과 같은 분들이 있는 걸 보면 또 위 말이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에게 부모님의 사랑과 노력만큼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노력과 여유는 본인 스스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본인이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이 '다른 것'들이기에 모두를 '사랑' 하지 못하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에 핑계는 없다.


 최근 밥 먹을 때 밥친구로 넷플릭스 신작 '닭강정'을 봤다. 그곳에 나오는 보라색 종족들은 거짓말을 하지도 못하고 인간을 해칠 수도 없다. 또 그들이 사는 행성은 '행복'을 추구할 대상이 아닌 자연스럽게 왔다 사라지고 다시 오는 그런 대상으로 바라본다. 다툼도 없고 경쟁도 없다. 지금 본인이 갖고 있는 것에 만족하며 성공과 성장만이 아닌 주변인들 더 챙기는 삶을 살아간다.
 나도 작년 여름부터 위와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운이 좋게도 그러한 생각들이 확립되던 시기에 동생 남자친구로부터 받은 이 책이 큰 위안이 되어주었고 자신감을 느끼게 해 줬다. 나이를 점점 먹어가면서 그런지(?) 요즘 행복과 감사함에 관한 글귀가 옛날보다 눈에 자주 보인다. 학교 화장실에도 '행복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닌 현재 나에 만족하고 감사함으로부터 온다'는 내용이 몇 년 된 것 같은 A4용지에 써져 붙어있다.
 이전에는 휴게소나 식당에 비슷한 말들이 쓰여있는 것을 보고도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요즘엔 다르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옛날 철학자나 많은 사람들이 하던 진부한 말이 인생의 전부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진부한 말이 몇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는 선택받은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단지 옛날 사람들이 살던 세상을 똑같이 살아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선인들의 소중한 교훈 그리고 몇 천년동안이나 살아남은 진부한 말들을 지금의 우리는 진부하게 들어서는 안된다. 한 인간의 삶은 이전의 사람들의 삶의 반복에 불과하다.
 데일카네기가 쓴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성공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고, 행복은 당신이 얻은 것을 원하는 것이다." 즉, 성공은 외부의 것으로부터 얻는 것이지만 행복은 내부의 것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