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완독을 했다. 2024년 9월, 개강을 하며 코스모스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쓰나미와 같은 여러 현실 상황 속에서 허우덕대던 나는, 코스모스를 코스모스(꽃)가 시들어 갈 때까지 거의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 중간고사가 끝난 뒤 조금씩 읽기 시작하였고 종강을 한 뒤 공격적으로 읽어가며 완독을 했다.
읽기가 꽤 버거운 책이다. 책 내용은 재밌고 신선하지만 그 두께로부터 오는 압도감은 상당하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두께 압박감'이 또다시 도진 것. 어렸을 때 책을 거의 읽지 않았기 때문에 두꺼운 책들은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거나 눈길조차 주지 않는 대상이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두꺼운 책을 손으로 들고 읽거나 실물로 사서 읽기 힘들 때가 많았다. '저걸 언제 다 읽지'라는 생각이 스프링처럼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꺼운 책이 E-BOOK 리더기와 같은 얇은 기계에 담겨있으면 또 여느 책들처럼 술술 잘 읽힌다. 참으로 재밌는 현상이다. 나는 '두께 압박감'이라는 것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옛날보다는 확실히 나아졌다. 꾸역꾸역(?) 두꺼운 책을 읽었던 경험이 생겨서 그런 것이다. 그렇다. 뭐든 하면 된다. 힘들어도 조금만 버티고 한 걸음씩 나아가 반복을 하면 안 될 게 없다. 그러나 늘 처음은 힘이 들긴 마찬가지다. 코스모스도 마찬가지였다. 약 700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면서 큼직하고 사이즈도 꽤 크다. 도서관이나 책을 좋아하신 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책이다. 필독서 및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이 책은 이미 돌아가신 유명한 천체물리학자셨던 칼 세이건이 1980년대 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창백한 푸른 점'을 쓰신 교수님이시다. 우리나라엔 코스모스 번역본이 약 20년 뒤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 ㅜㅜ 이 현상은 현재는 좀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비슷하다. 미국에서 나온 유명한 책이 한국에 번역되어 나오기까지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물론 유명하거나 히트작들은 빠르게 나온다.
코스모스는 우주를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다.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구까지. 이 책을 한 번만이라도 읽어보면 우주의 신비가 약 1% 정도 해결될 것이다. 우주는 헤아릴 수 없기에 사실은 0.001% 정도 풀렸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답게 보이는 효과가 있다. 어찌 됐든 좋은 일이다.
오늘 글에선 이 책에 담겨 있는 내용 중 읽으면서 인상 깊게 읽었던 문장을 카메라로 찍었었는데 이것에 대하여 공유를 해 볼 예정이다. 다른 멋진 글들 그리고 중요한 내용들이 정말 많았지만 내가 책을 대충 읽었거나 활자만 읽어 와닿지 않은 문장이 많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약 3가지 문단(?)에 대하여 말해보고자 한다.
지루한 지구에서부터 한참 높이 올라가서 지구를 내려다보면 대자연이 과연 한 점 먼지에 불과한 이 지구에 자신의 아름다움과 온갖 가치를 다 퍼부어 놓았는지 가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고공에서 지구를 내려다볼 수만 있다면 집을 떠나 먼 나라로 여행하는 사람들처럼 우리도 집안 구석에서 이루어진 일들의 잘잘못을 더 잘 판단할 수 있을 것이며, 더 공정하고 올바른 평가를 내려서 결국은 모든 것들에 합당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만큼이나 사람들이 잘 살고 있고, 잘 꾸며진 세계가 한둘이 아니라 여럿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이 위대하다 일컫는 것들에 찬미를 보내지 아니하게 되고, 또 일반 사람들이 정성을 쏟아 추구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오히려 하찮게 여기게 될 것이다.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이 글은 칼세이건이 쓴 글은 아니다. 네덜란드 과학자 하위헌스가 한 말이다. 이 글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한 점 먼지', '온갖 가치를 다 퍼부어 놓았는지', '먼 나라로 여행', '잘잘못', '합당한 가치', '잘 꾸며진 세계', '찬미를 보내지 아니하게 되고', '정성을 쏟아 추구하는 자질구레한 것들을 오히려 하찮게 여기게 될 것'.이다.
지구가 한 점 먼지이며 우리는 그보다 더 작은 먼지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들은 이 세상에 온갖 가치를 부여해 놨다. 이건 좋은 거, 저건 나쁜 거, 쟤는 착한 놈, 쟤는 나쁜 놈. 법, 제도, 규칙 등. 아름다움, 외모, 돈, 재력 등 각각 가치를 부여하며 이 지구를 유지해 나가려 한다. 하지만 그런 가치들은 지구 위에서 바라본다면 정말 '쓸데없는' 가치들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모른다. 사실은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자신의 삶이 너무나도 소중하기에 자신의 판단과 가치와 다른 건 모조리 부정하려는 습성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강박, 걱정, 부담, 욕심 등은 특히 해외여행을 갔을 때 더 보잘것 없어진다. 왜 내가 그런 거에 매달렸지? 그게 과연 중요할까? 등등의 생각들을 하며 말이다. 그러나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와 늘 그래왔듯 똑같이 반복적인 삶을 살아가며 다시 이전 행동과 판단을 끌고 온다.
작년 유럽 여행을 갔을 때 내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게 뭔지 더욱 깨달았던 것 같다. 그 깨달음을 아직까지 잃지 않고 가져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세상이 부여해 놓은 가치(심지어 본인 스스로 생각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찬미를 보내고 열광적으로 매달린다. 사회적 권위, 위치, 명예, 재산 등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되라고만 가르치지 모두를 도와주는 삶을 살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과연 죽음 앞에 섰을 때 당신에겐 앞에 말한 것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들로 여겨질까?
토론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논지의 완벽함이지 그 논지가 지니는 권위의 무게가 아니다.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들의 권위가 배우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장애의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국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의 판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권위의 무게가 중시되는 사회에서는 주어진 문제의 답을 스승이 내린 판단에서만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나는 피타고라스학파에서 통용됐던 이와 같은 관행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들은 논쟁에서 "우리의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는 식으로 대답하는 습관이 있었다. 여기서 스승은 물론 피타고라스를 가리킨다. 이미 정해진 견해들이 아주 강해서 타당한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권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식이었다.
원래부터 반골 성향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권위' 혹은 '명예' 혹은 '사회적 위치'에 혐오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학창 시절 학교를 다닐 땐 선생님들로부터 그랬고 대학교 땐 교수님들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든 선생님 혹은 교수님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미래에는 똑똑한 교수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학생들을 공감해 주고 학생들이 나아갈 방향을 약간씩만 조정해 주거나 다듬어 주는 식의 교육자가 필요하지 이제 지적 능력 있는 교수들은 필요가 없어질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학문 또는 학계 쪽에선 더더욱 말이다. 대부분의 교육자들이 인정하기 싫어하겠지만 이젠 AI가 지식이나 지능 분야에선 그들을 압살 할 것이다. 똑똑한 교수 100명이 와도 AI 한 대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각각의 교수들은 한 분야에만 특화되어 있지만 AI는 다르다. 모든 분야에 특화된 개체이며 그들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것이다.
2024년만 보더라도 GPT가 웬만한 박사생 수준 이상의 지식과 지능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분야'에서 말이다. 교육자보다 똑똑한 기계(?) 혹은 종(種)이 나온 시점에 똑똑한 능력과 그에 따라 부여된 권위, 명예, 사회적 위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현시대 많은 사람들은 지능, IQ, 똑똑함에 혈안이 되어 있는데 이는 이제 정말 보잘것없는 가치로 치부될 것이다. 마치 나이가 많은 연장자가 추장을 했던 시절에서 이제는 그렇지 않은 시대로 변모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칼세이건은 많은 사람들이 어떤 주장을 할 때 '권위'에 근거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다. '타당한 분석'이 아닌 '권위' 예를 들어 어떤 의사가 그런 말을 했어, 어떤 교수님이 이랬어 등 말이나 주장을 할 때 본인의 판단이 아닌 권위를 끌고 와 이야기하는 습성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말의 힘의 70%는 권위, 20% 논리, 10% 감정에 기반하여 나타난다고 이야기한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논리와 감정이 뒤 바뀌었을 수도)
코스모스에 쓰여있는 것처럼 이는 지금 현대 사회에서만 일어났던 현상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결과 권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개소리'도 '아, 그런가 보구나'하고 받아들이는 대중들이 너무 많아졌으며 그것을 근거로 본인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본인이 일일이 찾아보기 귀찮아서다. 내가 일일이 찾아보지 않고 유명인 혹은 권위자가 말하거나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렇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제일 편하고 쉽기 때문이다. 아무리 귀찮더라도 '타당한 판단'을 하기 위해 권위로부터 벗어나보자.
지구 도처에서 끔찍한 음모를 꾸미고 끝없는 바다를 정복한다고 법석을 떨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가 그런 짓을 하면 할수록 지구의 모습은 바깥세상의 천체들에 비해서 더욱더 초라해 보일 뿐이다. 제왕과 왕자들은 반성할지어다. 그대들은 하나의 점에 불과한 그래서 어쩌면 불쌍해 보이기고차 하는 보잘것없는 한구석의 주인이 되고자 그렇게도 많은 인명을 희생시켜야만 하는가?
-크리스티안 하위헌스-
이 책에선 하위헌스의 말이 많이 와닿았던 것 같다. 살면서 어떠한 것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비슷한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어떠한 일에 욕심이 들 때가 있지만 잘못됐음을 깨달았을 땐 곧장 손에서 놓아버리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며 또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며 부리는 욕심 때문에 인명이 희생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간접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또 상처를 줄 수가 있다. 내 삶과 내 욕심만 챙길 뿐 주변에 힘든 사람이나 이웃을 챙기려는 모습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이 진짜 포기하기 힘든 욕심 몇 가지는 챙기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모든 것에 욕심을 부리는 건 본인 스스로에게도 좋지 않을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고 타인에게 더 많은 관심과 베풂을 전달하며 따뜻한 지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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