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가 시작한 지 벌써 1달이 지났다. 작년엔 느껴보지 못했던 시간의 속절없음을 올해엔 몸소 느끼고 있다. 매주 과제가 있어서 그런지, 아님 월~금 모두 학교를 나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개강한 지 한 달이 지났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는다. 나름 이것저것 하면서 살고 있지만 과연 남는 게 무엇이며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큰 가치가 있는 일인지 간혹 의심이 들기도 한다.
작년부터 준비한 물리학과의 전공 수업을 듣고 있다. 열역학, 양자역학 등 고학년 때 듣는 과목 말고 일반물리학, 미적분학, 일반역학, 전자기학 등등 물리학과 1, 2 학년들이 듣는 수업을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은 경제학을 배웠고(물론 지속적으로 경제학 공부를 해 나갈 생각이다) 앞으로의 2년은 물리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약 한 달 밖에 물리학 수업을 듣지 않았지만 시험기간이 오기 전 (즉, 물리학이 싫어지기 전)에 물리학 수업 및 공부에 대한 소감을 쓰기 위해 티스토리에 들어왔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름의 순수하지만 무지한 상태로 경제학과 물리학을 비교해 보겠다.
<공통점>
1. 어떤 현상에 대하여 '수학적으로' 분석한다.
이 부분이 내가 경제학 말고 물리학에도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사실, 수학은 문과를 제외한 이공계 혹은 자연대 쪽 학생들은 모두 필수적으로 배워야 하는 학문이다. 물론 모두가 수학과만큼의 깊이 있는 내용을 배우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초적인 수학(미분적분학, 선형대수학 등)은 필수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문과 중에서도 경제학 그리고 통계학(통계학과는 이과 느낌이 있지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통계학과는 문과계열) 정도가 수학을 자주 쓰는 편이다. 세상은 불완전하지만 '수학'은 그나마 완전하다고 생각한다. 수학도 법칙 혹은 정의를 통해 만들어진 내용들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구상 어딜 가나 통용되는 '언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사과 한 개에 사과 한 개를 더하면 사과 두 개가 되고, 브라질에서도 사과 한 개에 사과 한 개를 더하면 사과 두 개가 된다. 이 대상이 꼭 사과일 필요는 없다. '셀 수 있는' 무언가면 된다. 그러나 이것도 모두 인간이 정한 '규칙'에 불과하다. 1+1=2. 정말 파고들면 끝도 없겠지만 대략적으로 수학은 모두에게나 보편적인 것들 중 하나다. 이러한 수학을 통해 자연 현상을 분석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이 틀림없다. 시장의 질서나 운동의 방향 모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설명한다는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수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수학을 통해 이야기하면 그 어떠한 것보다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해진다. 다른 말이나 언어는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약간만 잘못 설명해도 오해가 생기거나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수학은 그렇지 않다. 정해진 확실한 '규칙'안에서 설명되기 때문이다. 세상에 정말 많은 부분은 수학으로 설명된다는 것이 매우 놀랍다. 수학으로 설명되는 것만이 살아남은 것일 수도 있다.
2. 공부를 해나가는 체계적 과정이 있다.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려야 하는 학문)
다른 학문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님을 확실하고 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예를 들어, 경영학과나 컴퓨터 공학과만 하더라도 대학마다 커리큘럼이 제각각이다. 어느 정도 틀은 있지만 아무거나 먼저 들어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마케팅을 먼저 듣나 소비자 행동을 먼저 듣나 전략경영을 먼저 듣나 임금관리를 먼저 듣나 크게 상관은 없다. 컴공과도 자료구조를 먼저 듣든 컴파일러 과목을 먼저 듣든 컴퓨터 구조를 먼저 듣든 크게 상관이 없다. 아마 경영학과나 컴공과 같은 학과는 응용학문이기에 이러한 특성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하나 혹은 몇 개의 깊은 우물을 파기보단 수 십개의 구멍을 조금씩 파면서 많은 분야의 내용을 습득하며 또 그 습득하는 능력을 배양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경제학과 물리학은 (비슷한 다른 학문들도 몇 개 있을 듯싶다) 기본기와 기초 과목들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중요하다. 경제학과엔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과 물리학과엔 고전역학, 전자기학, 열역학(통계역학), 양자역학이 전공 필수 과목들이다. 내가 아직 학문을 깊게 해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위 전공 필수만 정말 빠삭하게 알고 있으면 학사 졸업을 해도 생각한다.(그렇지 않은 애들이 많기 때문) 그 필수 전공과목들만이라도 잘 닦아놓으면 무서울 게 없고 어려울 게 없다. 하지만 많은 경제학과 학생 중 위 전공 필수 과목도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이 정말 드물다. 이건 비단 우리 학교 이야기가 아니다. 첨부 사진은 옛날 서울대 경제학과의 이준구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기도 하다. 정말 기본기부터 박살 난 사람들이 많다. 물론 학점과 성적은 별개의 문제다. 굳이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도 학점이나 성적은 잘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당당하게 경제학과 물리학과 졸업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물리학과 이야기도 최근 서울대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분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접했다) 말이 좀 샜는데 경제학과 물리학은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야 하는 학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고전역학도 안 했는데 양자역학을 듣기엔 무리가 있다. 물론 정말 비상하고 미리 다 예습을 한 사람들은 충분하겠지만 그냥 처음부터 무턱대고 양자역학을 배우게 된다면 물리학의 참 맛(?)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단적인 예로 고등학교 물리가 있다. 물리는 사실상 수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라떼시절 고등학생들은 미적분을 어느 정도 배우기 전부터 물리 수업을 듣는다. 그러다 보니 흥미도 떨어지고 제2의 수학처럼 느껴져 물리 과목 선택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경제학과 물리학은 기본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가야 그 이후의 과정들을 온전하게 흡수할 수 있다.
3. 혼자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제격이다.
공부는 스터디를 만들어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것이 더 재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경제학과 물리학은 혼자 흥미를 갖고 공부를 해도 나름 충분한 학문이다.(남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님) 학교 전공 수업들도 팀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내가 다녔던 경영학과에서도 그리고 현재 우리 학교에 경영학과도 경영학과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팀플이 정말 장난 없이 많다. 하지만 경제학과엔 거의 없다. 내가 들은 15과목 중 팀플은 단 한 번 있었다. (학생들의 불만이 엄청났음 ㅋㅋ) 내향적인 학생들에겐 최고다. 물리학과 과목들도 마찬가지다. 실험 과목을 제외하고는 팀이 굳이 필요가 없다. 그냥 혼자 공부하는 것이 더 편하다. 무언가 공대처럼 팀 구성으로 프로젝트를 할 필요도 없고 미디어학과들처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과정이 크게 필요가 없다. 그냥 지금까지 쌓아온 경제학 지식, 물리학 지식을 습득하고 문제를 풀고 사고하면 된다.
<차이점>(물리학과 기준으로 쓰겠다)
1. 경제학과보다 더 수준 높고 다양한 수학을 사용한다.
경제학과에서도 수학을 자주 사용하지만 약간의 미분, 약간의 선형대수 지식만 있으면 학부 과정은 충분히 이수할 수 있다.(엄밀하게만 따지지 않으면) 그러나 물리학과는 엄밀성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배우는 수학 분량이 경제학과에 비해 엄청나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데 있어 미분적분, 미분방정식, 선형대수학의 모든 지식을 익혀두는 것이 중요하다. 확실히 이해 속도가 다르며 더 깊이 있는 공부가 가능하다. 경제학에선 편미분 전미분 등 내용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문제를 조금 풀다 보면 마치 미적분이라는 수학을 쓴다기보다 세탁기 버튼을 아무 생각 없이 누르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아, 그냥 최적화 문제네... 미분해야지... 라그랑지안 써야지 끄적끄적) 그러나 물리학은 세탁기 버튼 이상으로서 수학적 의미와 더 나아가 기하학적 의미까지의 깊은 내용을 필요로 한다. 요즘 수리물리학 과목을 듣고 있는데 정말 어렵다 ㅋㅋ. 물리학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학을 총체적으로 정리하는 전공과목인데 어렵다 ㅜㅜ. 경제학을 공부하고 시험 준비를 하면서 수학에서 막힌 부분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물리학을 공부할 땐 물리학 지식도 어렵지만 수학도 어려워서 막힐 때가 꽤 있다.
2. 현실에서 더 '유용'하다.
'유용성'을 따질 수 있는 객관적인 지표는 없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을 땐 물리학이 경제학보다 좀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경제학과 물리학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세상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세상엔 경제학, 물리학에서 고려하는 변수 이상의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합리적 또는 이성적 사고를 하며 소비하지 않는다. 또한 전기장 혹은 중력장을 우리가 눈으로 보거나 피부로 느낄 수 없다. 경제학에서 배우는 시장의 수요 논리 혹은 거시경제 정책들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물리학은 경제학보다 현실에 좀 더 유용하다. 스마트폰, 전구, 인터넷, 전자레인지,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등등 모든 것이 물리학으로부터 만들어진 산물들이다. 물리학은 이 세상 전부를 설명할 수 있으며 심지어 경제학까지 포괄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학은 현실과 맞지 않을 때가 많이 있다. 전공책에서 배운 대로 현실 시장의 가격이 정해지지 않으며 경제학에서의 논리대로 경제 정책이 집행되거나 제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장의 파생 상품들만 보더라도 '경제학'이라는 과목과는 거리가 멀다. 경제는 우리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이지만 '경제학' 자체는 현실 경제와는 거리가 멀다. 각 나라마다 경제 수준, 정책, 시장의 크기가 다르며 각 나라에서 비슷한 경제현상이 발생하더라도 같은 논리로 설명하거나 비슷한 정책을 시행하기 까다로운 부분이 많다. 반면, 물리학은 위에 말한 내용들처럼 자연 그대로 이루어지며(변수를 포함하더라도) 어디서나 적용된다. 미국에서도 사과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고, 우리는 어디에서나 전자기파를 활용할 수 있다.
3. '경제'(경제학을 포함)에 비해 현실에서 탐욕과 욕심이 없다.(아예 없다)
2번 이야기의 연장선 상에 있는 이야기다.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경제학보다 물리학에 더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유는 탐욕과 욕심이 물리학엔 껴들어갈 틈이 적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리 누군가 중력을 거부하고 싶어도 우리가 점프했을 때 저절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경제는 점점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또 주식시장이나 경제 관련 시장에 직접 투자나 지출을 하면 할수록 이게 경제인지 '정치'인지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경제'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힘이 있는 누군가 권력을 행사하면 즉 정치를 하게 되면 온 경제 시스템이 움직인다. 최근 가상자산이라 불리는 '비트코인 etf' 승인이 그 예다. 승인을 하냐 안 하냐는 경제법칙에 따라 이뤄지지 않는다. 세계 경제의 패권을 쥐고 있는 세력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계 경제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달러를 찍어내고 싶으면 달러를 쉽게 찍어내면 된다. 그리고 무역망을 뒤 흔들고 싶으면 원자재나 관련 물품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우린 안 할 건데' 시전을 해버리면 된다.(그 효과가 본인들에게 좋지 않게 돌아올지라도) '권도형'씨처럼 이쁘게 포장을 해 '코인'사기로 경제 판을 뒤 흔들 수도 있다. 가끔은 경제학 혹은 경제는 정치학이나 정치의 하수인이라고 느낄 때가 많다. 흔히 말해 경제는 순수하지 않다. 때가 많이 묻어 있다. 이러한 현시대에 경제학을 배우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갖을까? 생각이 참 많아진다. 그러나 물리학은 다르다. 세상에 힘 있는 사람이 물리학 법칙을 바꾸려고 한다 해서 바꿀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따듯한 물이 차가운 물과 섞였을 때 다시 원래대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지 물리학은 그 공부를 하는 데 있어 의미와 가치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고 또 그 어느 외압을 받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물리학도 그 기술이 사용되는 대상에 있어서는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물리학법칙'만큼은 (아직까진) 보편적이며 공평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금까지 간단하게 경제학과 물리학을 비교해 봤다. 어느 학문이 더 우월한가를 따진 것이 아니다. 다만 나의 주관적인 의견을 가득 담아 약 한 달 동안 느낀 경제학과 물리학의 차이를 적어봤다. 나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모든 생각들이 학문 탐구에 있어 큰 의미를 줄 것이며 학문이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물리학 그리고 경제학 공부를 해나가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 그것들을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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