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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

유럽 여행을 추억하며...THE END

by Quantum_H 2024. 8. 24.

후... 유럽 여행 일대기 시리즈를 쓰느라 정말 많은 시간을 할애했었다. 그만큼 가치가 있었고 또 기록하고 싶은 추억들이었다. 오늘은 유럽 여행 일대기에선 쓰지 않았던 여러 가지 느낀 점들에 대해 써 볼 예정이다. 아마 이 글이 유럽여행 관련해서는 마지막 스토리가 될 것 같다. 다음 주부터는 다른 주제의 글을 작성할 것 같다.

나름 장기간 유럽 여행을 하면서 느낀 점이 정말 많았다. 또 배운 점도 많았으며 나의 생각의 변환점, 기존 생각들에 대한 확신이 든 부분도 여럿 있었다. 앞으로 쓸 나의 이야기는 어떤 편견, 편향 혹은 착각에 빠져 있는 내용들일 수 있겠지만, 현재의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그것이기에 일단 써 볼 예정이다. 그럼 시작하겠다. 

1. 새로 발견한 한국의 강점: 카페

 한국에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이 유럽여행을 하면서 불현듯 느껴졌다. 한국은 뭐니 뭐니 해도 '카페 강국'이다. 현재, 한국에 있는 커피 브랜드가 그 많은 치킨 브랜드 수를 넘었다는 기사가 나올 지경이니 말이다. 세계 그 어떤 나라와 견주어 볼 때도 한국처럼 다양한 종류의 카페 그리고 음료가 있는 곳을 찾기 힘들 것이다. 물론 유럽에도 카페는 꽤 있었다. 하지만 문화적인 차이 때문인지, 식당과 카페가 같이 섞여있던 곳이 많았으며 카페도 한국의 프랜차이즈처럼 블록마다 널려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한국엔 현재 카카오맵에서 찾아보더라도 수십 개의 가게들이 어디에나 밀집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그 예로, 아무리 번화가여도 스타벅스가 1개 있을까 말까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심지어 이탈리아에선 스타벅스를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그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은 인정한다.) 다른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여의도 회사 밀집 지역 스타벅스 갯수 ㄷㄷㄷ

 카페 갯수는 그렇다 치고 나는 유럽에 있으면서 한국의 '아이스 음료'가 너무나도 그리웠다. 여름에 유럽을 다녀왔어서 그런지 꽤 더웠다. 그럴 때마다 아이스 음료를 찾아다녔었는데 스타벅스를 제외하고는 아이스커피를 찾는 게 정말 어려웠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의 손으로 커피에 얼음을 넣어주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한다고 한다. 그 결과, 대부분의 가게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콜드브루를 주거나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얼음이 담긴 그릇을 따로 주었다. 얼음도 엄청 조금 줬다. 따뜻한 커피에 얼음을 부으면 몇 초 뒤 다 녹아버려 미지근한 커피가 돼버린다. 다른 음료의 시원함 정도도 마찬가지였다. 메가커피에서 파는 딸기라떼, 아이스 바닐라 라떼, 소다 스무디 등이 너무 그리웠다. 아무리 더웠어도 아이스 음료가 도로 곳곳에 있었다면 덜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 카페와 같은 곳은 거의 없었다.

진짜 이런식으로 나오거나 얼음을 그냥 접시에 담아준다 ㅋㅋ

 이로 인해, 유럽에서 느낀 한국에 대한 그리움 중 80%는 카페 때문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한국을 그리워하게 된 것에 스스로가 놀랐다. 한국은 카페 천국이다. 이건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 와서 아이스 음료를 마시는 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몰랐었다. 또한 카페 접근성이 압도적이었다. 우리는 식당에 가지 않아도 카페에 쉽게 갈 수 있으며 내 주변 100m 안에 카페가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다.(대도시 기준)

2. 너무나도 다른 식당 문화

 동생이 알려주지 않았으면 모를 뻔 했다. 유럽의 거의 모든 식당은 들어가자마자 손님이 앉고 싶은 자리로 불쑥 가 앉으면 큰 실례다. 문 앞에서 웨이터 분께 인원을 알려준 뒤 웨이터가 안내해 주는 곳에 앉아야 한다. 웨이터가 없는 식당이면 상관은 없다. 

 메뉴를 주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웨이터를 '저기요!', '이모!', 하고 불러서는 절대 안 된다. 이건 정말정말 예의가 없는 행동이다. 한국처럼 띵동 울리는 벨도 없다. 웨이터와 눈을 마주치거나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우리나라랑은 전혀 다른 문화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우선 손님들이 천천히 음식 메뉴를 살펴본 뒤 주문을 해도 상관이 없다는 의도에서다. 우리나라는 앉자마자 약 2분 만에 아르바이트생분이 와서 메뉴를 물어보거나 누구는 앉자마자 1분도 되지 않아 아르바이트생을 불러 주문을 한다. 하지만 유럽은 다르다. 10분 20분 메뉴를 구경하고 토론한 뒤 시켜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다. 심지어 프랑스에선 음식 메뉴판을 가지고도 30분 이상 토론과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유럽에선 메뉴판도 인원수만큼 준다. 각자가 메뉴판을 하나씩 편하게 보고 난 후에 메뉴를 시킨다.(물론 우리 가족은 엄마 아빠는 메뉴판을 거의 읽으시지 않아 그렇게까지 많이는 필요 없었다.)

모든 식당에서 메뉴판을 인원수대로 받았다.

 나는 이러한 문화에서도 '여유 있음'을 느꼈다. 우리나라처럼 재빨리 급하게 메뉴를 시키고 먹는 문화가 아닌 시간을 넉넉하게 갖고 식사를 하는 분위기였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유럽에서 느긋하게 주문했던 내가 근래 들어 한국에선 눈치를 보며 빠르게 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당 음식을 다 먹은 것 같으면 웨이터가 와서  빈 접시를 치워준다. 이것 또한 한국과 크게 다른 문화인데 우리나라는 다른 사람이 먹는 와중에 빈 접시나 다 먹은 사람 접시를 치우는 것은 예의 없는 행동이다. 또한 다 먹고 얘기를 할 때도 있을 텐데 이때 테이블에 놓인 그릇과 접시를 가져간다는 것은 '빨리 나가라'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식사 후 깨끗해진 테이블

 하지만 유럽에선 손님이 다 먹은 접시를 놓고 테이블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손님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유럽에서의 식당들은 식당 내에서도 카페 음료와 디저트를 팔고 또 모든 것을 그곳에서 해결하고 가는 분위기라 미리 다 먹은 음식들을 이후에 먹을 디저트를 위해 치워 주는 것일 수도 있다.(한국은 대체로 식사를 한 뒤 카페를 따로 간다. 한국에 카페가 많아진 이유에 들어갈 듯하다) 여하튼, 유럽에선 다 먹은 접시를 그때그때 치워주는 문화가 당연한 문화다. 나는 이 문화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가끔은 다 먹고 난장판이 된 테이블을 앞에 두고 얘기할 때가 좀 불편했기 때문이다. 깔끔하면 좋지 않은가 ㅎ.

3. 건물 높이와 모양

 유럽을 여행을 다니면서 제일 만족했고 좋아했던 부분이다. 이전 스토리들에도 여러 번 작성했던 내용인데, 내가 서울에 살아서 그런지 서울 거리를 다닐 때면 답답함을 느낀다. 왼쪽엔 쌩쌩 달리는 차와 오른쪽과 길 건너편엔 엄청난 고층 빌딩들.(5층 이상) 이런 것들이 너무나도 답답했다. 하늘을 좀 더 넓게 그리고 여유 있게 보고 싶어도 도로와 건물 때문에 보기가 답답하다. 쌩쌩 달리는 차들 때문에 여유는커녕 빠르게 이 도로를 탈출해야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높은 게 뭐가 그리 좋은지(좁은 땅덩어리에 효율성 높은 건물을 지어야 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서로가 더 높게 짓기 위해 경쟁한다.

서울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도토리 키재기처럼 고만고만한 건물들 천지였다. 그것이 아무리 번화가 도심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대략 높아야 6층이고 대부분 5층정도 되어 보였다. 그러니 하늘도 잘 보이고 건물로부터 오는 심리적 압박감도 덜했다.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던 부분이었다. 

하늘에 천장이 있는 것 마냥 건물 높이가 비슷비슷

 한국 거리에도 낮은 건물들이 많지 않느냐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답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함과 압박감을 느꼈을까? 아마 건물의 모양과 생김새 때문에 더더욱 그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많은 분들도 아시겠지만 유럽의 건물들은 정말 '유럽 건물'이라는 느낌을 확 받을 수 있다. 마치 건물에 조각을 만든 것처럼 아름답다. 고딕양식의 느낌. 하지만 우리나라의 건물들은 대체로 직사각형 덩어리의 컨테이너 박스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건물 자체가 '노잼'이다. 창문으로 도배되어있는 건물과 곡선을 활용하지 않은 건물들이 대부분이다. 건물의 모양들이 다 비슷비슷하다. 높은 건물을 볼 때면 답답함을 느끼는데 그 육중한 직사각형 건물을 보면 더더욱 재미가 없어 답답해진다. 누구는 한국의 높은 건물들과 반듯하고 비슷비슷한 건물들이 놓여있는 거리를 보고 마천루와 같은 첨단 도시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아니다. 내가 느끼는 것은 환경이 나를 누르는 듯한 답답함이다. 유럽에서는 거리를 걸어 다닐 때마다 좋았는데 그 이유가 위에서 말한 것들 때문이지 않을까. 건물들이 낮으니 언제나 하늘을 바라볼 수 있고 아이보리 톤의 각각 다른 장식이 달린 건물을 볼 때마다 입가엔 미소가 지어졌다. 

4. 사람들이 입고 있는 다양한 의상

 우리나라 사람들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인 점은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었다. 많은 한국인들은 알겠지만 흔히 모나미룩, 여자 알약룩?이라는 사회적 밈이 있었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입고 있는 의상들을 보면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무채색 위주의 옷들이 정말 많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80%가 무채색 옷을 입고 있으며 그나마 갈색이면 튀는 옷이다. 검은색, 회색, 하얀색 투성인 세상.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의 옷을 입으면 튀어 보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 왜 옷을 눈치 입고 입어?"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다. 튀는 의상에 대한 암묵적인 시선들이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살아온 젊은 세대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입는 옷을 따라 입으니 모나미 룩, 알약 룩과 같은 유행이 번지는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이 이런 문화가 덜컥하고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사람들의 의상이 제각각각각각각각각각각이었다. 아니 이런 옷을 입어? 할 정도의 옷 또한 많았다.(나의 이런 생각 또한 우리나라에 살아오면서 학습한 편견 덩어리다. '이런 옷을 입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다.) 여자들이 살이 다 비치거나 독특한 옷을 입어도 모두가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것이 그들의 패션이고 그들의 개성이기 때문이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서구권 사람들이 보면 기겁할노릇

 요즘(?) 한국에는 남자들의 반바지 문화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다. 그 이유로는 남자의 다리털 때문이다. 다리털도 안 밀고 혹은 관리 안 하고 반바지 입는 것을 '싫어하는' 여자들이 늘고 있다. 다리털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것을 싫어하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은 괜찮지만 '싫어하는'건 문제의 소지가 있다. 유튜브에 관련한 영상만 찾아보더라도 수두룩 하다. 심지어 남자들이 나시를 입는 것에도 호불호와 판단이 심하다. 겨드라이 털을 밀고 입어야 한다 아니면 안 그래도 된다 혹은 남자가 나시를 입는 게 말이 안 된다 등의 의견이 sns나 유튜브엔 가득하다. (이런 시선을 신경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sns나 유튜브 사용을 거의 줄였다.) 극도로 '관리'에 집중하는 한국의 문화가 '자연스러움'을 인정하지 못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유럽 남자들은 그냥 그런 시선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 자기 마음대로 옷을 입는 문화가 부러웠다.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본인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문화말이다. 로마에 있으면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에 살면서 한국인들의 주된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나는 이제 그런 시선에 더더욱 벗어나보려고 한다. 문신도 마찬가지다. 그 누가 어떤 생각을 하든 한국인들이 어떤 시선을 갖고 바라보든 상관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도 모르게 우리나라 사람들의 '남 눈치'를 봤던 성향을 내 던지려고 한다.

 사실 그러한 행동을 올해부터 해 오고 있었다. 작년 복학하고 나서는 나는 단 한 번도 여름에 반바지를 입고 밖에 나가본 적이 없다.(운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러나 미국에서 유학을 하다 방학 때 한국에 놀러 온 친구를 보고 많은 점을 배웠다. 그 친구는 반바지 하나랑 위에 얇은 티 하나를 대충 입고 있었는데 너무나도 자유로워 보였다. 나도 그 결과 올해부턴 다리에 털이 있건 말건 반바지를 입고 다니고 있다. 정말 편하다. 남들의 눈치에서 벗어나니 삶의 질이 올라갔다. 아직까진 나도 상의는 무채색 위주로 입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옷을 입을 예정이다. 몇 주 전엔 회색+핑크 패턴 반바지까지 구매하였다 ㅎㅎ.

5. 수건 말리기 

 유럽 호텔엔 처음 보는 사다리 같은 쇠 봉이 각 방에 설치되어 있었다. 나중에 동생한테 듣고 보니 수건을 말리는 용도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샤워를 하든 머리를 감든 한번 쓴 수건을 바로 세탁기 행이었다. 그러나 서구권 사람들은 몸이나 머리를 닦은 수건을 다시 말려 사용하는 것이었다. 깨끗하게 씻고 몸에 있는 물기만 닦은 건데 뭐가 더러우며 왜 세탁을 해야 하냐는 것이다. 그들도 수건에서 냄새가 날 때는 세탁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기 전까지는 수건을 말려 사용하는데 그 호텔 사다리에 있는 것과 같은 것에 걸어 놓은 뒤 봉 온도를 조절하여 말리는 것이었다. 

사용해보진 못했다.

 나는 이 문화를 듣고 더럽다 혹은 너무 싫다는 생각은 들지도 않았고 단 하나의 생각만이 나의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당연하게 여겼던 부분이 나 스스로도 왜 그렇게 하고 있는지 몰랐구나'. 나는 어렸을 때부터(습관적으로) 한 번 사용한 수건은 '당연하게' 세탁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선 그것이 '당연한 문화'가 아니었다.

 이건 뭐 그렇다 쳐도 나 스스로가 내 행동을 하는 데 있어 '아무 생각 없이 했다는 것'에 놀랐다. 나도 한 번 사용한 수건을 세탁기에 넣을 때 나만의 이유가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나도 모르게 그동안 넣어 왔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이 놀랐다. 아직까지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행동들에 의문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늘 의문을 가져왔지만 나도 너무 자연스럽게 행동을 해 온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의문을 갖지 않았던 것 같았다. 나도 큰 성찰을 했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계기였다. 내가 자주 사용하는 말들이나 행동에 늘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6. 좁은 도로와 횡단보도 그리고 무단횡단 (개인적인 편견 가득함)

 유럽 도심의 도로는 정말 좁다. 차가 다니는 도로도 좁지만 인도도 좁은 곳이 많았다. 또한 중간중간 신호등도 많았다. 차들도 빠르게 달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무단횡단이 정말 심했다. 신호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빨간불에 그냥 건넌다.  우리나라의 지방 대도시 혹은 서울만 보더라도 도로의 폭이 엄청 넓으며 3~4차선은 기본이다. 하지만 유럽 도심의 대부분의 거리들의 차선이 2차선이면 정말 넓은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횡단보도는 무단횡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인도와 반대편 인도간격이 넓고 그 사이로 차들이 쌩쌩 다닌다. 하나의 차선 사이의 거리도 되게 멀다.

 무단횡단을 해도 빵빵거리는 차가 거의 없었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많이 박혀있어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또 사람들이 되게 당당하게 무단횡단을 한다. 신호등의 신호를 받으려고 뛰는 사람이나 빨리 달리는 차들이 없다. 사람들은 신호등 불이 꺼지든 말든 차가 없으면 그냥 건넌다. 기존의 나는 우리나라에서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되게 싫어했었다. 그런 규칙들을 하나씩 지키지 않으니 사회에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회 문제는 이러한 데서부터 발생한다.) 유럽 사람들의 무단횡단 모습도 맨 처음에는 좀 불편했지만 점점 자주 보게 되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빨간불이다 ㅋㅋ 이때까진 어색해서 우리가족은 건너지 못했다.

 뇌피셜, 즉 여기서부턴 나의 편견 가득한 개인적인 의견을 제시해 보겠다.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의견이니 어떠한 객관적 근거는 없다.

 나는 유럽인들의 여유를 되게 부러워했다. 이전 유럽 일대기에 쓴 내용에도 쓰여 있겠지만 한국엔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특히 직장인, 학생) 달리는 차들을 보면 여유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겐 여유가 없다. 이젠 해외 사람들 모두가 하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그 대표적 예시다. 뭐든 빨리빨리 하려고 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 누가 조금만 늦어도 기다리기 힘들어하며 모두가 최고 혹은 앞만을 향해 남들보다 '빨리' 달려가려고 애를 쓴다. 이러한 문화의 이유가 '교통 신호 문화, 횡단보도, 무단횡단 문화'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겠다. 

 우선 우리나라는 도심에 차도가 정말 많다. 심지어 그 차선들의 간격도 매우 넓어 반대 인도와의 거리가 엄청나다. 그러다 보니 무단횡단을 하기가 정말 어렵고 무섭다. 그 결과 신호가 켜져야지만 반대로 넘어갈 수 있다. 신호를 한 번 놓치면 몇 분을 기다려야 한다. 그렇기에 횡단보도 깜빡임이 끝날 때쯤 마구마구 달려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한 번 놓치면 허송세월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은 달랐다. 애초에 도로가 좁고 신호등의 신호도 짧고 차들도 쌩쌩 달리지 않다 보니 그냥 늦어도 크게 상관이 없어 보였다. 신호가 어떻든 그냥 건너면 된다. 굳이 뛰어갈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여유'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 아닐까? 일상 자체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굳이 빨리빨리 처리할 필요가 없다'.

 이는 보행자가 아닌 운전자 일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꼬리 물기, 과속 등 정말 서울 도심을 보면 장난없다. 간혹 여유 있는 차량을 볼 때면 나도 괜스레 마음이 여유로워질 지경이니. 운전자 또한 어느 신호를 받지 못하면 몇 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사거리라면 3차례의 신호가 켜지고 꺼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본인의 차례가 온다. 그러다 보니 노란불에도 꾸역꾸역 가는 차량과 꼬리물기하는 차량이 수도 없이 많다. 심지어 다른 도로로 빠지는 길에선 얌체처럼 끼어드는 사람까지.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여유'가 없음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이럴 때마다 생각나는 말이 있다.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하지만 유럽의 운전자들은 (물론 과격한 운전자는 어딜 가나 있지만) 대체로 천천히 도로를 달렸다. 신호가 꺼질 것 같으면 천천히 갔으며 굳이 빨리 갈 명분이 없어 보였다. 신호도 금방금방 변하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러한 문화가 유럽의 '여유'문화에 한몫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여유가 없는 것이고. 

부가적인 내용

 에어컨과 와이파이는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유럽은 습도가 그렇게 높지 않아 우리나라처럼 숨이 답답하거나 숨을 못 쉴 정도는 아니다. 가만히 그늘에 있거나 앉아있으면 시원해졌다. 에어컨이 있으면 좋겠지만 필수품은 아니다. 와이파이나 인터넷 속도도 나에겐 그리 큰 불편함을 주지는 않았다. 카톡과 간단한 인터넷 서핑 같은 것은 어느 정도 잘 됐다. (한국에 비하면 최악이긴 하다) 하지만 워낙 핸드폰으로 뭘 자주 하지 않아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인터넷 속도가 느린 것이 도움이 되었다. 초반엔 너무 답답해서 폰을 안 봤기 때문이다ㅋㅋ. 그러면서 풍경과 주변 모습을 자주 보기 시작했고 생각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또한 유럽여행을 하는 내내 나도 많이 예민하고 부담이 있어 신경이 날카로웠던 것 같았다. 그 결과, 가족들에게 상처나 굳이 안 해도 될 말, 안 해도 될 행동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더 했어도 될 행동들을 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다. '여유'가 중요하다가 몇 년 전부터 역설하고 있는 나로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여유'는 경제적인 여유가 뒷받침되어야 따라오기 쉬운 것도 맞지만 결국 '여유'는 본인이 의도적으로 스스로 만들어야 본인이 '여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다음 여행이나 일상에선 가족들에게 좀 더 여유를 갖는 모습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상에서도 ^^ 

 끝으로, 유럽 여행을 한 뒤 내가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에 살면서 나는, 그나마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사람들에 비해 '본질'을 좀 더 추구하려 했고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몇몇의 사람들이 인정해 준 부분이기도 하지만 그 삶에 나름 만족했었다.

 하지만 유럽 여행을 갔다 오고 느낀 점은 '아직 한참 멀었다'였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마주한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 문화, 삶의 방식을 보고 나는 내 삶의 더 나아가 인간의 삶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더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진짜 별 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받거나 신경을 세우는 것, 주된 일이 아니 부가적인 것들에 집중하는 것,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트러블, 괜한 집착, 고민과 걱정 등 멀리서 보면 별 것도 아닌 일에 내가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 힘을 쏟아붓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러한 느낌을 또 받은 분야가 '공부'에서였다. 간단하고 가볍게 생각하면 더 쉽게 이해되고 잘할 수 있는 부분들에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고 이상한 부분에 꽂혀 그것이 본질이라 생각하며 가장 중요한 것인 것처럼 시간을 쏟았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었다.

바티칸에서 찍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또 인간들이 행하는 이 세상 일의 대부분이 '본질'이나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죽음과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탐구를 꾸준히 해왔어서 나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건데 굳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고 한 번뿐일 수도 있는 삶을 찬란하고 가치 있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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