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비용', 영어로는 sunk cost라 한다. sunk는 침몰된 이라는 의미고 cost는 비용을 뜻한다. 침몰된 비용, 즉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의미한다. 개인적으로, 경제학 여러 용어나 개념들 중 우리의 인생과 많이 맞닿아 있는 용어 중 하나가 '매몰비용'이라고 생각한다.
매몰비용은 비단 경제학에서만 자주 사용되거나 적용되는 용어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 조금 더 여유롭고 싶고 성격 자체도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우리는 '매몰비용'이라는 개념을 우리의 삶에서 떼어내면 안 된다. 이 용어를 떼어내면 떼어낼수록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행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행복이 무엇인지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과는 멀어질 것이다.
매몰비용 얘기를 그동안의 쓴 글 중간중간 자주 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문제 중 대다수가 인간이 '매몰비용'에 누구보다 집착하는 존재여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고 비유되는 매몰비용은 경제학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개인에게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사회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매몰비용'의 예시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음식을 10000원을 주고 주문하였다. 하지만 음식이 생각보다 맛이 없는 것이었다. 점점 나의 기분을 좋지 않게 만드는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을지 말 지는 '매몰비용'과 관련된 문제다. 이미 음식을 시킨 이상 우리는 그 돈을 다시는 회수할 수 없다. 먹던 음식이 맛없다고 환불해 달라는 것은 진상들만 하는 짓이다. 이미 지불한 비용을 고려해 다음 선택을 하는 것은 바보 같은 길로 우리를 이끌 확률이 높다. 10000원이 아까워서 맛없는 음식을 계속 먹다간 더 기분이 안 좋아지거나 더 최악의 상황으로는 체하는 경우까지 발생할 수 있다. (나의 경험담이다.) 중간에 맛이 없다면 숟가락을 놓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는데, 오히려 지불한 비용이 아까워 선택한 결과가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뮤지컬 상영으로 또 다른 예로 들어보자. 비싼 뮤지컬 티켓을 약 1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고 해보자. 그러나 뮤지컬이 너무나 재미가 없었고 본인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시작한 지 20분만 깨달았다. (물론 계속 보다 보면 재미있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 지루하다고 가정. 우린 이때 그냥 나오는 것이 '합리적 선택'일 것이다.) 재미도 없는 뮤지컬을 계속 보고 있는 것은 그 사건 하나로만 봤을 땐 정말 웃긴 상황인 것이다. 당신은 TV에 방송이 당신에게 재미없어도 계속 시청을 하는가? 다른 채널로 돌리지 않는가? 이미 발생한 비용이 아까워서 재미도 없는 뮤지컬을 보느라 꾸역꾸역 보고 소중한 시간도 날리고...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했다면 더 재밌게 했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이미 지불한 10만 원을 아까워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예로 '맨큐의 경제학'을 쓴 맨큐 교수님이 강연에서 했던 비유를 각색해서 소개해 보겠다. 15달러인 영화 티켓이 10달러로 할인을 하길래 15달러였을 때는 안 봤을 영화 티켓을 10달러에 구매했다고 해보자. 그러나 영화관을 가던 도중 티켓을 잃어버려 영화 티켓이 하늘로 날아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시 10달러를 내고 영화를 볼 것인가 아니면 안 볼 것인가? 누구는 10달러짜리를 잃어버렸으니 이미 사건은 발생한 것이고 10달러를 또 내고 영화를 본다고 할 것이지만 또 누구는 10달러를 또 내고 영화 티켓을 구매하면 그건 10달러 영화 티켓이 아닌 이전에 잃어버린 금액까지 더해 20달러로 티켓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아까워서 보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나는 전자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이 인생에 있어 우리에게 더 큰 만족을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나도 원래는 후자의 사람이었는데 최근 들어 성향이 많이 바뀌었다. (경제학을 배우는 경제학도라면 적어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ㅋㅋ) 대부분의 사람들의 선택도 후자와 같을 것이다. 연구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선택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예를 통해 그다지 좋지 않은 선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첫 번째 경우에선 이미 지불된 10000원, 두 번째 경우에선 이미 지불한 10만 원, 세 번째 경우에서의 이미 잃어버린 티켓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합리적'인 판단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기존에 지불한 금액이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합리적', '비합리적'에 대한 논의는 하지 않겠다. 그냥 직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생각이 드는 합리성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러한 매몰비용의 문제는 사회문제와도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어,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요즘은 이전보다 나아졌긴 했지만 선임이 된 사람들 중 본인이 후임 시절에 겪었던 일들 때문에 그 일들을 보상받고 싶거나 혹은 동등하게 이점을 누리고 싶어 선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들이 후임일 때 욕했던 선임들처럼 똑같이 행동한다.
주식 투자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락한 주가로부터 오는 손실은 이미 발생한 것이며 지나간 일이다. 그러나 그 돈들을 생각하며 보상받고 싶고 아깝다는 생각에 더 무리한 투자를 하거나 더 욕심을 부리다가 골로 가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시험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해온 것들이 있는데 본인 뜻대로 일어나지 않은 현실의 결과 때문에 다시 시험에 목을 매달게 된다. 이전의 지나온 시간들, 노력들로 판단을 해서는 안되고 지금 하고 싶냐 안 하고 싶냐를 기준으로 할지 말지 판단해야 흔히 말하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지난날들이 아까워 혹은 비용이나 시간이 아까워 무지성 선택을 했다간 운이 좋아 좋은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깊은 늪에 빠질 수도 있다.
본인의 진로나 직업 선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점점 그 분야에 시간을 많이 투자하고 경력이 쌓여갈수록 지금까지 해 온 노력과 시간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다른 분야에서 본인에게 맞는 정말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본인이 계속하던 것이 그리 큰 열정을 주지 않더라도 지금의 투자한 시간들 혹은 과거의 일들 때문에 돌아갈 수도 없는 것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돌아갈 수 없는게 아니라 돌아가지 '않으려고'하는 것이며 그럴 '용기'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과거 비용과 시간에 대한 보상 욕심이 인간을 망친다. 매몰비용에 집착하게 되면 마음의 여유도 사라지고 삶의 질도 떨어진다. 물이 그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것처럼 유유히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고 그 상황에만 집중을 하고 행동하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다. 폭포에서 동시에 떨어진 물은 자신보다 늦게 떨어진 물이 자신을 앞질러 간다 해서 파도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먼저 왔든 늦게 왔든 그런 과거에 얽매이지 않은 채 현재만을 살아간다.
정리해 보자면 매몰비용은 인간의 욕심, 욕망, 미련, 기대와도 연관이 되어 있다.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을 생각하며 매몰비용을 말끔히 잊은 채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야 더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견해다. 이게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매몰비용 때문에 아득바득 우기거나 꾸역꾸역 일을 하는 사람보단 차라리 합리화하며 삶의 질을 높이는 삶을 택하겠다.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고 이런 일들이 발생했으며, 나는 이렇게 까지 해왔는데 왜 이렇냐라는 식의 과거의 투자한 시간, 노력들을 배제한 채 멀찌감치 제삼자의 입장에서 어떤 일들을 바라봐야만 비로소 그 일의 '실체'가 보인다. 본인들이 그 자리에 있거나 그 속에 있는 사람은 '매몰비용'의 중요성을 깨닫지 않는 한 고집 불통인 사람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됐듯이 인간은 '비합리적'으로 행동할 때가 정말 많으며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본인이 여유를 갖고 싶고 인생을 진정으로 즐기고 싶은 사람이라면 '매몰비용'을 꼭 생각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일기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0% 실망하지 않는 법 (4) | 2024.09.29 |
---|---|
시계 구입 (9) | 2024.09.14 |
유럽 여행을 추억하며...THE END (2) | 2024.08.24 |
'경제학'과 '물리학' 비교 (3) | 2024.04.07 |
2024년 버킷리스트 (2) | 2024.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