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수면 위 내시경을 받았다. 원래는 작년에 받을까 했었는데 귀찮아서 그랬던 것도 있었지만 무서움이 더 컸었다. 나는 평소 병원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한국의 가장 큰 메리트 중 하나가 의료시스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메리트를 자주 활용했었다. 물론 과도한 의료 시설 방문으로 국가의 재정 문제와 의료 시스템 남용 혹은 오용의 사례가 늘어나고 있지만 어느 시스템이나 부작용은 있는 법. 사실 우리나라 사람보다 타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사용하는 의료비 혜택이 더 많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정서와 사회 문화 체제랑은 잘 맞지 않는 편이라 이왕 우리나라에서 사는 거 다른 측면에서 혜택을 찾으려고 했다. 의료 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기에 한국에서 살 땐 적극 활용하려 했다.
병원에 무서워서 가지 않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있다. 특히 치과 같은 곳을 예를 들 수 있다. 치과에서의 시술들은 상당히 고통스럽다. 입을 벌리고 무서운 기계 소리, 수압이 센 물을 통한 세척, 입을 계속 벌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 충치 치료나 신경치료의 고통은 정말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프다는 점 등이 치과에 방문하기 무서운 이유다. 평소 느끼는 약간의 고통을 참는 것으로 회피한다. 하지만 자칫하다간 더 큰 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 도저히 아파서 참지 못할 때 치과에 방문하지 않는가?
나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건강 관련 겁이 많았어서 그런지 배가 아프거나 몸살이 나거나 치아에 문제가 있을 땐 곧장 병원에 가는 편이었다. 다 나을 때까지 참기 보단 하루빨리 치료받는 게 장기적으로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 '위 검사 두려움'이 찾아왔다. 상당히 고통스러웠기에 위암 혹은 위궤양 등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었다. 이전 나의 글에도 쓰여 있을 수도 있지만 위 통증 시작은 2020년 여름이었다. 원인은 '군대'다. 작년 이맘때 쓴 '내 인생의 최대의 시련' 시리즈가 바로 '군대'이야기이다. 나는 '군대'만큼 내 인생의 최대 시련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여러 시련과 힘듦이 있겠지만 '강제적'일 확률은 극히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모두 내 '선택'에 의해(그것의 정도가 1%라도) 모든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만약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는 스트레스와 시련들은 내가 그 직책을 선택했기에 혹은 내가 그 회사, 직업을 선택했기에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전혀 다른 문제다. 나는 내가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을뿐더러 심지어 남자로 태어난다고 선택하지 않았다. 남자는 대부분은 군대를 가야 하는 한국에서 태어나겠다고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태어나진' 이후, 군대를 강제적으로 강압적으로 가야만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해외 유명한 기업가나 유명인 들 중에도 각 나라의 군복무 제도 때문에 이민을 가거나 나라를 떠난 사람들도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가 있다. 이처럼 군 문제는 많은 '남성'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요소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남자라면 군대를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깊게 정말 깊게 뿌리 박혀있다. 이러한 점이 나는 정말 스트레스였다. 재수를 하면서 삼반수를 하면서 겪었던 스트레스에 비하면 정말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였다. 오히려 재수나 삼반수 때는 내가 선택한 일들이기에 덤덤히 묵묵히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군대를 가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었다. 나는 그나마 꿀 업무인 '의무소방'에 가길 위해 서류심사, 필기고사, 체력시험, 면접을 준비했었다. 이 과정에서 위병이 시작됐다. 위가 쓰라리기 시작했으며, 위산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는 가끔 그러는 건가 싶었는데 점점 갈수록 빈도가 늘어났다. 무언가 신경 쓰는 상황이 1초만 발생하더라도 위가 쓰라리기 시작했다. 약간 타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을 때도 통증이 발생했다. 이전의 나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네가 그냥 육군을 안 가고 의무소방 가려고 준비한 거 아니야?"라고. 하지만 이 질문엔 문제가 있다. '군대'라는 제도가 없었다면 나는 이런 고민을 할 필요도 저런 경험을 할 필요도 위병이 생길 이유도 없었다. 의무적 강제가 기반인 시스템에선 절대 허용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렇게 군 생활하면서도 위통은 지속됐다. 군대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해 계속 증상이 발생했다. 군 생활 하면서의 스트레스 직원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등등. 전역을 하고 나서도 이 증상은 계속 됐다. 작년 1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도 계속 됐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응을 하는 느낌이었다. 살짝 신경을 쓰면 위가 곧장 아파왔다. 이제는 그냥 일반 음식을 먹고도 위가 아프다. 사실 음식, 수면 등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기에 관리가 가능했지만 '정신적인 부분'은 달랐다. 누군가 당신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당신의 머릿속엔 '코끼리'가 제일 먼저 생각날 것이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스트레스받는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생각한 순간 스트레스를 받았고, '위가 아프다고 생각하지 마'라고 생각한 순간 위가 아파왔다. ㅋㅋㅋㅋㅋ 정신적인 문제는 이렇게 통제하기가 어렵다. 누군가 당신한테 '매운 음식' 먹지 말라고 하면 먹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 나쁜 기억 생각하지 마라고 한다면 바로 과거에 겪었던 나쁜 기억이 생각날 것이다.
사실 위병으로 그동안 병원을 두 번 정도 갔었다. 첫 번째 간 병원은 가자마자 위 내시경을 받으라고 해서 부모님이 거절했다. 위 내시경은 40~50대부터 대체로 받는 것인데 그 병원의 의사는 약처방 혹은 진료도 잘하지 않은 채 바로 위내시경을 보자고 한 것이었다. 자기 병원 시술기구 뽕을 뽑으려고 하는 의사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나중에 그 병원 리뷰를 찾아보니 많은 사람들이 시술이나 기계 팔이 하는 의사라고 써놨다. ㅋㅋ 또 다른 병원에선 별다른 약 처방도 해주지 않고 정말 원론적인 어찌 보면 당연하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해줬다. 이 증상으로 위 내시경을 받거나 큰 문제가 있다면 온 전 국민이 다 위내시경 받아야 하고 문제가 있는 거라고 ㅋㅋ. 사실 맞는 말씀이다. 내가 건강에 너무 민감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픈 걸 어째... 정말 위가 쓰라린 고통은 매번 겪어도 힘들다... 지금도...
2023년도에는 해야 할 공부들이나 일들이 많았어서 위 내시경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올 겨울엔 꼭 받겠다고 다짐을 했었기에 며칠 전 위내시경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께 내 증상을 말씀드리니 전형적인 스트레스 성 위염 증상이라고 하셨다. 이런 환자가 너무 많아 그런지 관련 탬플릿 자료도 보여주시면서 설명해 주셨다. 나이도 어리다고 하시면서 만 24살에 위내시경 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지만 엄마와 나는 위 내시경을 꼭 받아보기로 다짐했었기 때문에 받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받아보시는 건 말리지는 않겠다고 하시면서 분명 큰 이상은 없을 거라고 재차 말씀하셨다.
그렇게 난생처음 수면으로 위 내시경을 받았다. 처음엔 긴장이 됐다. 수면 마취가 좀 무서웠다. 정말 정말 가끔 수면마취를 하고 못 일어난 사람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봤기 때문이다. 혹시 그 대상이 내가 되진 않을지... 수면 내시경 할 때 사용하는 마취 약의 분량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떨렸다. 병원 베드에 수액을 맞고 있는 상태로 누워있을 때 별의별 생각이 들었다. 진짜 못 깨어날 수도 있을 텐데 혹시 모를 '유언'이라도 써놓을걸 후회가 됐던 순간이었다. 사람일은 정말 모르기에 만에 하나 아니 1억에 하나여도 그 대상이 나 자신일 수도 있다. 후회를 하고 있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링거에 마취 주사 두 분량을 투여하셨다. 그때도 나는 '마취가 안되면 어떡하지', '한번 참아볼까'라고 생각했다. 살짝 몸이 따끔따끔거렸고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말소리가 귓가에 살짝 들려왔다.
눈을 부릅떠보니 벌써 시술이 끝나있었다. 시술을 안 한 느낌이었다 ㅋㅋ 벌써 끝났나... 약간 비몽사몽 한 상태로 있었는데 옆에 엄마가 계셨다. 잘 받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재밌는(?) 상황이 발생했다. 내가 위 내시경을 받을 때 하도 난리를 쳐서 간호사 선생님 4명 다른 원장 의사 선생님까지 1명 추가해서 총 6명이 나를 잡고 있는 상태로 내시경을 했다고 하셨다...... 정말 충격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6명은 심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난리를 치고 방해를 했으면 6명이 나한테 붙다니... 너무 부끄러웠다. 아니 나는 정말 무죄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ㅋㅋㅋㅋㅋㅋ. 내 기억엔 정말 단 한 장면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냥 몸이 따끔따끔해지다 눈을 뜨니 옆에 엄마가 있었을 뿐이었다. 그 중간 과정에 기억은 정말 삭제 됐었다.
민망한 표정을 계속하면서 의사 선생님의 진료 확인을 받으러 갔다. 다행히 결과는 별 큰 문제는 없었다... 아 중간에 살짝 벗겨진 부분이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아니라고 하셨다... 아마 거기에 위산이나 여러 음식들이 살짝 닿을 때 그런 느낌이 드는 건가 싶었다. 살짝 조직을 떼서 검사를 하신다고 하셨지만 그 조직 떼는 것도 중간에 포기했다고 하셨다. 하도 난리를 쳐서... 정말 민망했다. 심지어 종종 수면마취해도 나와 비슷한 환자가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음에는 비수면으로 꼭 해보라고 말씀하셨다... 본인도 지금까지 계속해봤는데 할만하다고 ^^ 젊은 의사 선생님이었는데 표정 관리를 연신하고 계신 것 같았다 ㅎㅎ
인생 첫 수면 마취를 강렬하게 마쳤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아, 혹시 죽음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흔히들 인간이 죽을 때 가장 늦게까지 열려있는 기관이 '청각'이라고 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따끔따끔하면서 몸은 움직일 생각이 들지는 않았지만 귀에서는 마지막까지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러다 눈을 뜨니 끝나있었다. 그리고 가장 큰 포인트는 그 사이의 과정 정말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잠을 자거나 아무리 깊은 잠이어도 중간중간 뒤척이는 과정 혹은 꿈 이야기는 기억에 얼핏 남는다. 하지만 수면 마취는 달랐다. 정말 기억이 없었다. 그리고 너무 편안했고 너무 꿀잠을 잤다. 만약 내가 일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내가 수면 내시경을 받았는지도 몰랐을 것이고 더 나아가 '내가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깨어나서 이전 과정이 생각나고 내가 위 내시경을 받았다는 생각이 다시 드는 것이지 만약 내가 그대로 깨어나지 못했다면 나는 내가 살았는지도 죽었는지도 모르게 STOP 됐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이러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사라졌을 것이다. 혹시 혼수상태나 오랜 기간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도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생각을 해보고 수면 마취 과정을 복기해 보니 나는 오히려 이 삶에 '더 큰 자신감'이 생겼다. 인생은 정말 별 거 없다. 내 스토리를 읽어온 분들은 아시다시피, 나는 인생이랑 늘 별 거 없다고 생각해 왔었지만 이번에 더욱 실감했다. 죽으면 끝이고 이 순간의 삶은 찰나에 불가하다는 생각이 더더욱 들었다. 아무리 이 현실에서 슬픈 일, 힘든 일, 우울한 일이 있어도 죽으면 단 하나도 기억나지 않을 것 같았다. 심지어 행복하고 좋았고 즐거웠던 일들도 마찬가지. 지금 느끼는 모든 기억들과 감정들은 남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괜한 걱정을 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주변인들을 잘 보살피지 않을 때도 있었던 나 자신을 또 한 번 반성하게 됐다. 심지어 어떠한 도전 어떠한 경험도 더더욱 두려워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죽으면 그만이다. 죽으면 끝이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인이기에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가끔은 기독교인들 중에 잠깐 죽었을 때(?) 천국을 봤다거나 하나님을 봤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이해하고 공감은 하지만 살아가면서 들었던 이야기들 혹은 습득된 그런 내용들이 마치 꿈에서처럼 잠깐 반영된 것 일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죽었다 깨어난 사람은 결과적으로 죽은 건 아니다. 따라서 그들은 죽음에 대해선 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대 죽음의 판정기준에 따라서는 죽었다 살아났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국 지금 살아있는 사람은 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죽음이라는 기준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뇌사 상태는 죽은 것인가 살아있는 것인가 하는 논쟁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으며 학자마다 상대적으로 생각한다. 그렇기에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죽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 또 한 번 더 깨닫는 계기를 위 내시경을 통해 겪었다. 정말 우연찮은 경험으로 우연찮은 생각들을 하게 됐다. 처음에는 위가 아파서 위 내시경을 받았지만 이 생각이 나의 죽음에 대한 가치관과 경험으로 이어질지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이러한 인생의 흐름도 재미있는 경험 같았다. 또 더욱더 내 주변 사람들과 이웃을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은 살아있는 자의 몫이라는 말도 있다. 죽은 사람은 모른다.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은 자들을 애도하고 보살피는 것이다. 죽은 자신은 알지 못할 것이다.(이 말도 틀릴 수도 있다 나도 죽어보지 않았기에. 자신이 죽은 걸 알 수 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서는 절대 경험해보지 못할 분야에 대해서는 이게 맞다 저게 맞다고 논쟁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이 순간 현재에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나도 살아가면서 남들에게 싫은 얘기, 상처 주는 얘기를 할 때가 종종 있다. 아직까지도 그런 생각과 마음들을 모조리 지워버리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닌 꾸준하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감을 갖고 살며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닌 세상에 큰 힘과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이 이야기를 여자친구에게 위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자친구가 "오, 완전 렌고쿠(귀멸의 칼날 주인공) 아냐?"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캐릭터인 '렌고쿠'도 만화에서 그랬었다. 악귀에게 수면 졸음 공격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고 있는 상태로 외부로부터 공격을 막아냈다. '렌고쿠의 삶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인데 혹시 나도 '삶의 의지'가 정말 강한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 또한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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