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기장/일상

일상과 망상

by LePetitPrinceHong 2023. 9. 17.

 벌써 9월 중순이 지나가고 있다. 어느덧, 개강을 한 지 2주가 지났다. 나름 알찬 방학을 끝내고 개강을 해서 그런지 방학 때가 그리웠다. 방학 때 하던 공부가 더 재밌었고 의욕이 넘쳤었다. 대학이 주는 장점은 셀 수 없이 많을 테지만 단점 또한 그에 비례하여 있을 것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장점으론 학교 커뮤니티, 친구 또는 인맥, 교수님과의 직접적인 소통, 학교 시설 이용, 그 나이에만 느낄 수 있는 대학 분위기 등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이란 학문을 탐구하는 공간인 것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단점은 다음과 같다.

 등하교 시간의 소요, 체력 소비, 출석 관리(전자출결 시스템 방식이라 깜빡하고 못 찍으면 큰 골칫거리이다...), 수강신청, 과제, 시험 준비 등이 있다. 과제와 시험 대부분 교수님마다 본인의 출제 스타일과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몇몇 과목은 족보도 많이 돌아다니지만 주변에 친한 선배가 있지 않고서야 개인이 구하기는 힘들다. 강의마저도 수강신청기간엔 사고파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적게는 몇 만 원에서 인기 있는 강의는 몇십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심지어 시험을 위한 족보도 몇 만 원에 거래가 된다.

 '족보'라는 것은 참 애매하다. '족보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무엇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한 의미부터 살펴보아야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다. 족보의 악습을 끊기 위해선 족보가 모든 학생들에게 뿌려지거나 혹은 완 새로운 문제를 교수님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번 학기, 완전 새로운 문제를 매 학기 시험마다 준비하는 교수님이 계셨다. 이 교수님처럼 모두가 이러한 방식으로 과제 또는 시험을 출제해야 하는 것이 '교수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본인들이 그러한 책임을 지기 싫다면 본인이 지금까지 낸 시험 문제나 자료들을 모든 학생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본다. 그냥 모두에게 똑같은 족보와 정보들이 있으면 그곳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위에 설명한 두 가지 방식 중 하나라도 교수님이 선택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교수님은 '교수'라는 직함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학교는 족보 공개가 의무가 아니라 그렇지 않은 교수님이 꽤 많았다. 아예 공개를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를 하든 본인이 다 공개를 하든 시험문제를 완 새롭게 내든 해야 하는데 결국 그들은 거기에 노력을 다하지 않는다. 귀찮아서? 혹은 능력이 없어서?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어느 이유가 됐든 '선생'이라는 자격이 없음은 분명하다.

기사에서 퍼왔다.

 족보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욕 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선배로부터 족보를 받는 행위도 결국 똑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시장 논리에 따라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 족보를 구매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자본으로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다. '교수님의 저작권이 있다'라는 말은 사실 통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저작권을 운운하는 교수들은 더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장 형성의 원인이 본인 때문인 것을 모르는 것이기에. 족보를 돈 주고 구매하는 것과 선배나 자신들의 인맥을 통해 족보를 구하는 것은 동일하다. 선배와 밥약 혹은 커피 사주기 등을 통해 족보를 받는 것도 자본을 사용하는 일이다. 이것을 인맥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다. 인맥도 돈이 있어야 쌓는 거고 친밀도도 같은 시간을 써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돈이지 않는가. 나도 이전 학교에 다닐 때 선배로부터 족보를 몇 번 받았었기에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나는 족보를 사는 사람이나 족보를 선배로부터 받는 사람들을 욕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들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을 뿐이다. 사회 대부분의 현상에선 누가 누구를 욕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에선 족보도 구매하지 않고 선배로부터 받지 않는 사람들은 두 부류의 사람 모두 욕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그건 본인의 자유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인 것은 이러한 모든 사건의 발단은 '교수'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전자출결 또한 문제이다. 제대로 어플이나 시스템을 만들어 놓지도 않았으면서 학생들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이처럼 대학이 주는 장점도 많지만 단점 또한 매우 많이 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도 대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 같은 망상'을 아이들에게 심어주는데 위와 같은 단점은 철저히 은폐하고 묵살시킨다. 일단, 대학 가서 생각하라는 식. 허나 그렇게 온 대학이 바뀔 이유는 만무하다. 사실 이와 관련된 정보를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알리고 싶지도 않기에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에도 대학을 마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존재처럼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하게' 틀렸다. '다르다'가 아니다. 틀렸다.

방학동안 공부한 강의중 하나

 요즘엔 디지털 미디어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온라인상엔 정말 대학 강의보다 뛰어난 영상이 너무 많이 올라와있다. 심지어 무료이다. (아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한 컴퓨터와 전기세를 생각하면 무료는 아니다.) 그것을 통해 집에서 더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대한 피드백과 아웃풋을 온라인상에서 받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과거의 대학 우상화에 목매여있는 사람들에겐 그래도 진짜 증명을 주는 대학을 다님으로써 얻는 학위를 중요시한다. 늘 말하는 이야기지만 백날 컴공과 나와봤자 그보다 실력 좋은 중학생, 고등학생 프로그래머도 또는 고졸 프로그래머도 요즘엔 정말 많을 것이다. 하지만 컴공과 입장에선 그 졸렬한 학위 또는 본인의 자존심을 굽히기 싫어 학위 한 장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정말 추하지 않은가? 본인들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학벌주의 또는 학력주의는 사회가 만들어 낸 폐단이 아니다. 그것에 동조하는 각 개인이 직접 만들어 낸 현상이다. 그것에 조했던 나도 마찬가지다. 사회가 그런 거지~ 혹은 어쩔 수 없는 거지~ 는 통하지 않는다.

 과연 이러한 대학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A4 한 두장 짜리 학위 증명서 따내는 것이 '학문 탐구'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래서 '내세울게 대학밖에 없어서'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 같다.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을 길러야 한다. 대학은 능력 향상에 도움을 주긴 하겠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대학이 주는 단점과 그들의 민낯도 지금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교육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생존 관련 교육, 인생 관련 교육, 정치 관련 교육, 성 관련 교육 등 정말 우리나라의 교육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면서 고령화 저출산 문제만 이야기 해댄다. 그러한 현상의 본질은 모른 채 그냥 눈에 보이는 것들만 '빨리' 처리하고 싶은 속셈인 것이다.

 공부를 잘해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있는 고등학교에 가면 그곳에선 국, 수, 영, 탐구, 학생부 '주작'만 가르쳐 줄 뿐이다. 공부를 못하면 관심이 있어도 교내 행사 또는 활동에 껴주지 않는다. 공부를 좀 못해 일반고 혹은 공업 관련 고등학교를 보면 그곳에 선생님들 또한 의욕도 많이 없고 설렁설렁 교육한다. 학생들은 생존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어떻게 살아나갈지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 주변에서 시키는 것 정해진 루트만 따라가기 바쁘다. 인생 관련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본인만의 색깔과 가치를 길러내지 못한다. 정치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한쪽 당에 자신의 신념과 이념을 박은 이후로는 절대 변하려 하지 않는다. 민주당은 머리가 깨져도 민주당 편이고 국힘은 머리가 깨져도 국힘 편이다. 잘한 것은 서로가 칭찬하고 못한 것은 서로가 비난해야 하는데 결국 그 알량한 자존심이 모든 것을 망친다. 성 관련 교육도 터부시되고 있는 우리나라이기에 청소년 심지어 성인이 되어서도 성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 너무나도 많다. 나도 위와 같은 상황에서 자라온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도 그들과 다르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인가 잘못됐음을 깨닫는 순간 또는 왜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우리는 그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니까 라는 방패로 본인을 막아서려면 안된다. 본인이 그러한 생각을 진심으로 하려 하지 않고 또는 무언가 이미 잘 다져놓은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두려움' 때문이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다. 다르게 살면 사회에서 낙오될까 봐 혹은 다른 생각을 하면 누군가에게 무시당할까 봐 혹은 도태될까 봐 등등. 그렇지만 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막상 해보면 별 거 없다. 어차피 죽을 건데 '두려움'속에 갇혀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두려운가? 자신만의 comfort zone에서 사는 사람이야말로 나약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말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단순히 학력 또는 지능의 무식이 아닌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따라 무식함은 갈린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야 말로 사회적인 대세를 따르는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봐봐,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니까.'라는 말을 하고 다닌다. 자신들과 방향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추진한다는 이유로 저런 말을 해댄다. 과연 여기서 무식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은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본인의 뜻을 '대세'에 묻는 순간 그 사람이 바로 무식한 사람이다. 본인 스스로 생각했다고들 하지만 적어도 1년 이상은 그것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해봤는지 묻고 싶다. 백날 여론에서 떠든 이야기, 자극적인 뉴스기사, 커뮤니티, sns에 온 시간을 쏟아부으면서 본인 스스로 생각을 했다고 하는 사람들에겐 더 이상 해줄 말은 없다. 이 또한 본인들의 양심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다 알 것이다. 스스로의 생각을 한 시간들을 소중히 여기기보단 '나도 그러한 생각을 한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이 더 큰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이다. 세간에 떠도는 말 중 '한 권의 책만을 읽은 사람의 생각과 철학이 무섭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흔히 우리나라에서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라는 말처럼 쓰인다. 한 권의 책만 읽고 떠들어 대는 사람이 무섭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는 이와는 전혀 다르다. 한번 찾아들 봐라! 위와 같이 생각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어설프게'만 알고 있는 것이다. '한 권의 책만 읽은 사람이 무섭다'라는 말은 이처럼 오용되고 있지만 그 제대로 된 뜻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식한 사람들'(위에서 내가 정의한 무식한 사람들을 의미)이 자주 사용한다. 과연 그들은 책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봤을지 궁금하다.

토마스 아퀴나스


 오늘은 최근 다시금 든 생각들에 대해 써 보았다. 지금까지 티스토리에 꽤 많은 글들을 써와서 소재가 떨어졌다. 내가 근 3~4년간 생각해 오던 것들을 나름대로 정리하며 써나가려 했지만 정말 어려운 과정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글을 쓰니 이전보다 생각이 많이 정리되긴 한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철학 혹은 신념 혹은 가치관들이 나의 글들에 많이 녹아져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고정된 생각들이 아님을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누구보다 부드러워지고 싶은 사람이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다. 선입견이 정말로 무섭기에 그 선입견을 파괴하고 싶은 것이 나의 목표다.

 나의 가치관과 생각 혹은 철학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 바람직한 것들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도 힘든 때가 종종 있으며 모순적인 상황에 부딪힐 때도 많다. 하지만 그것을 또 이겨내 가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의 미션이기에 나는 그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려 한다. 이 티스토리 블로그에 쓴 글들은 오직 나에게만 적용되는 괜찮은 철학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자주 감정이 격해지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이 또한 내가 아직 부족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들이라 생각한다.

  더 성장해나가려 한다. 더 재밌는 인생을 살아보려고 한다. 

'일기장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31~1/1 일상  (2) 2024.01.07
진짜 일상  (1) 2023.10.08
빅이슈!!!  (0) 2023.09.03
코로나 재감염(?)과 요즘 일상.  (0) 2023.08.19
자극으로부터 도피(SNS;댓글)  (0) 2023.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