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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장/군대

내 인생 최대의 시련 part 4

by LePetitPrinceHong 2023. 1. 15.

  2주 차 때부터는 완벽 적응을 했다. 코로나 검사를 두 번씩이나 하고 결과까지 기다려야 했다. 9일간 거의 생활관 내에서 정신 교육 및 이론 교육을 받았다. 2주 차 금요일에 코로나 검사를 또 받았는데 그다음 날이 주말이라 또 쉬었다. 그때쯤엔 훈련소 생활관 동기들이랑 나름 친해져 있었다. 서로 자기소개도 하고 마피아 게임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아 1주 차 때 깜빡하고 쓰지 못한 게 있었다. 웬만한 생활용품은 개인별로 다 지급되었다. 솔직히 몸만 왔어도 괜찮아 보였지만 나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필요한 건 챙겼다. 물통이랑 팔꿈치&무릎보호대는 진짜 필수다.

 2주 차쯤엔 집에서 보내온 편지와 친구들이 써준 편지도 도착했다. 부모님이 정말 매일매일 써주신 것 같았다. 너무 감사했다. 하루하루 그 편지를 보며 힘을 냈고 더 잘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자친구가 미리 써준 편지도 하루하루 읽으면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우리 생활관에서 인편을 많이 받은 축에 속했지만 진짜 넘사벽 친구가 있었다. 그 동기도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무슨 여자 친구가 하루에 7~8번씩은 써준 것 같았다 ㅋㅋㅋㅋㅋ 아주 로맨틱해 보였다.

 그리고 이때부턴 불침번도 섰다. 물론 격리 중이라 생활관 내에서 각자 돌아가며 섰다. 새벽에 중간에 일어나 시간을 보내는 게 너무 힘들고 지루했다. 어느 날은 내 동기 한 명이 불침번을 하다 간이침대에서 잠들어서 깨보니 아침이었던 적이 있었다 ㅋㅋ 아 심지어 하루가 아니고 며칠을 몰래몰래 대충 했다.(진짜 너무 귀찮았다.)

 부사관들이 전화도 생각보다 자주 시켜줬고 생활 터치도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 막사에는 의방+의경+공공보건+공익이 같이 생활했는데 근처 공익 생활관에서 폰을 안 냈다 걸렸었다 ㅋㅋ) 2주 차 때까지는 밥도 생활관에서 먹고 씻는 것도 다 막사 안에서 해결했다. 가져왔던 책은 다 읽었어서 편지를 열심히 쓰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렇게 3주 차가 됐다.


 3주 차 때부턴 본격적인 훈련을 받았다. 말이 3주 차지 훈련소 기간은 10일 정도 남아있을 때다 ㅋㅋ 내일부턴 10 일대가 깨지는데 진짜 시간이 빠르다고 생각했다. 받았던 훈련을 생각나는 대로 써보자면 제식훈련, 연병장에서 경례, 자세, 보폭 훈련, 총기 청소, 총기 영점조절, 총기에 바둑돌 올려놓고 안 떨어뜨리기, 수류탄 투척 훈련, 엎드려쏴 앉아쏴 훈련, 엄폐 훈련, 구급 처치 훈련 등 짧은 시간 내에 이 전부를 해야 하니 하루하루가 정말 빨리 지나갔다. 나름 배울 점도 많았고 재미있었다. 바뀐 점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총이 생각보다 무겁다

1. 이때부턴 밥도 식당에 가서 먹었다. 기존에는 생활관에 있으면 알아서 배식해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코로나 전체 음성이 뜨자 한 소대가 다 같이 모여야 밥을 먹으러 갔다;; 한 명이라도 안 오면 걔를 기다렸다,,, 비가 왔던 적이 많았는데 판초우의를 입고 식당엘 갔다. 판초우의 냄새가 진짜 너무 역겹다... 빨지도 않았던 것 같고 그전에 수많은 훈련병들이 입었던 거라 그런지 냄새에 기절할 뻔했다... 또 밥을 다 먹고 생활관으로 복귀할 때도 다 같이 모여서 왔다. 코로나 격리 때 비닐 식판이 너무 그리웠다. 식당 밥 에피소드도 있다. 내가 입대하기 며칠 전에 군대 부실급식이 또 논란이 됐어서 정부사람들도 와서 체크하고 급식 설문도 했었다. ㅋㅋ 타이밍이 너무 좋았다. 군대 밥은 나름 괜찮았는데 고기 양이 적었던 게 아쉬웠다. 그리고 국이 진짜 제일 심각하다. 무슨 된장 또는 고추장 또는 소금 탄 물을 먹는 것 같았다. 건더기도 거의 없고,,, 군대리아를 먹는 날은 음식이 진짜 많이 나왔다. 빵, 샐러드, 패티, 콘푸로스트, 주스, 딸기잼 등등. 급식이 대체적으로 나쁘진 않았다.

이 사진은 '롯데리아 군대리아버거' ㅋㅋ

2. 격리가 풀려 좋았던 점은 공공 목욕탕을 쓸 수 있었다. 그전에는 다른 생활관이 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했었는데 목욕탕이 풀리면서 많은 인원이 다 같이 들어가 넓은 공간에서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너무 개운했고 쾌적했다.

3. 또 아침마다 연병장에 집합해서 체조 및 구보를 하였다. 아침부터 뛰니 진짜 너무 귀찮았고 힘들었었다. 그때 부정맥이 좀 있었을 때라(지금은 증상이 거의 사라졌다) 구보도 하다가 다른 훈련으로 대체하였다. 비 오는 날이 제일 좋았다. 아침에 연병장 집합을 안 했기 때문이다. 육군 도수 체조를 배웠는데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ㅋㅋ

아침 조회 복장은 다행히 군복아닌 생활복,,,

 4. 빡센 훈련도 하기 시작했다. 각개전투가 그 예다. 뙤약볕 연병장에서 구조물을 놓고 우리는 총기와 약간의 군장을 차고 훈련을 받았다. 엎드리기를 수십 번 앉기를 수십 번 눕기를 수십 번 했다. (무릎보호대&팔꿈치보호대를 안 가져왔던 내 동기들은 다 까지고 피가 난 애들도 있었다.) 또 어느 한날은 비가 왔었는데 그래도 각개전투를 했다. 진흙탕 바닥에서 기고 눕고 걷고 ㅋㅋㅋㅋㅋ 근데 나름 재미있었다. 힘들긴 했지만 뭔가 군대에서만 해볼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더 즐거웠다. (훈련을 즐겁게 하는 게 맞나,,,?)

ptsd 온다

5. 생활관 청소도 이젠 훈련병들이 각자 하기 시작했다. 각자 맡은 구역을 매일 청소했고 주말인가 클린데이가 있었는데 그땐 더 꼼꼼히 했다. 아 빨래는 그전부터 했긴 했는데 나는 훈련소에 건조기가 있다는 거에 놀랐다. 무슨 드럼세탁기에 건조기까지 ㅋㅋ 다행히도 맨날 뽀송뽀송한 옷을 입을 수 있었다.

6. 생활관 내에서 했던 불침번도 이제 생활관 별로 돌아가며 약 1시간씩 했다. 각 생활관 인원체크, 총기 수량확인이 주 업무였다. 불침번을 서면서 편지도 쓰고 책도 읽었었는데 새벽에 비몽사몽이었어서,,,

7. 중간에 공도 구해서 원바운드도 동기들이랑 했었다. 고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 해봤는데 거기서 했던 원바도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8. px를 갈 수 있었다. 약 3번 정도 갔었는데 처음 갔었을 때 먹을 거 왕창이랑 화장품 세트를 쓸어왔다 ㅋㅋ 육군들은 부대에도 있겠지만 나는 px가 훈련소가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사회 음식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심지어 가격이 사회가격에 반이상 쌌다... 진짜 가격을 보면 충격 그 자체다. px에서 유명한 달팽이 크림은 사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퍼온거라.. 거의 비슷했던 것 같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라면 키가 다른 아이들보다 살짝 큰 편이었어서 겪은 연병장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다른 훈련병들과 얘기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부사관님들 중 한 분이 나의 방탄모에 쓰여있던 숫자를 부르며 '48번 훈련병 앞으로'라고 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에는 나를 부르는 건지 몰랐었다 ㅋㅋ 또 한 번 더 그러시길래 옆에 동기가 너 아니냐면서 나가보라 했다. 솔직히 개쫄아있었다. '아니 아무 잘못도 안 했는데 왜 지'라고 생각하며 잘못한 일을 그 찰나에 계속 생각하기 시작했다 ㅋㅋㅋㅋ 나가보니 '기수 훈련병'이라고 다 같이 이동할 때 맨 앞에서 '연대 깃발'을 들고 가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ㅋㅋ 그 일을 한 5~6번 했던 것 같다. 솔직히 재미없었다... 동기들이랑 옆에서 떠들면서 가고 싶었는데 나는 맨 앞에서 혼자 터덜터덜,,,ㅋㅋㅋㅋ 다행히 특별 전화시간 10분을 받아 더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 전화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1541ㅋ

  전화를 하는 방식은 10~12명씩 일렬로 앉아 전화를 했었다. 맨 마지막 사람에게 스톱워치를 주고 스톱워치 10분이 지나 삐비빅 소리가 울리면 끝나는 식이었다. 1주 차, 2주 차 때까지는 정석대로 전화를 딱 10분 했었다. 그런데 3주 차 때부터 대담해졌는지 나는 맨 마지막쯤에 서서 스톱워치를 받고 중간중간에 일시정지를 눌렀다 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절실했었는지,,, 좀 전화하다 너무 오래 하나 싶으면 다시 시작 누르고 부사관 또는 분대장 훈련병들이 관심을 안주나 싶을 때 일시정지를 누르기를 반복했다. 한 18분 까지는 해본 것 같다 ㅋㅋㅋ 가끔은 옆에 잘 모르는 훈련병들도 있었는데 막 웃으면서 엄지 척 날려준 훈련병도 있었다. 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ㅎㅎ

4주 차 때는 행군만 남겨두고 있었다. 군장을 차고 약 20km 정도 논산훈련소 주변을 걷는 것이었다. 나는 완전군장도 하지 않았다,,, 원래 허리도 안 좋았고 부정맥도 있는데 괜히 무리했다 건강만 다치면 나만 손해라고 생각했다. 우리 분대원들 절반 이상은 다 최소한의 군장만 하고 행군을 했다. (이게 맞지) 행군을 잘 마치고 이제 훈련소 청소를 하고 퇴소 준비를 하였다.


   

 목요일이 퇴소였다. 공중보건과 공익 사람들은 다 사복을 입고 집에 갈 준비를 하였지만 의경들과 의방들은 군복을 입고 각각 경찰학교, 소방학교 갈 준비를 하였다. 우리 분대에 있던 공중보건 형과 의경 친구 둘을 보내고 의방들은 대기하고 있었다. 소방학교 버스가 와서 나랑 동기들은 연병장으로 집합을 했다. 소방학교 차에서 나오는 교관들 몸이 미쳤었다. 근육질에 다 구조대 사람들 같았다. 군 입대 전 그래도 훈련소보단 소방학교가 편하고 삶의 질이 좋다길래 조금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약 100명 정도 의방들 인원 체크를 하던 중 어떤 훈련병이 떠들며 웃었다. 그러자 대표 지도 교관이 엄청 화난 목소리로 소리 지르면서 그 훈련병 보고 튀어나오라고 했다. 진짜 분위기가 갑분싸 되는 순간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앞으로 '내 인생 최대의 시련' 시리즈는 소방학교 이야기, 소방서 이야기, 군 입대 총정리 이야기 약 3편까지만 더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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