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엄청 추워졌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반팔을 입고 다녔던 것 같은데 날씨가 급격하게 변했다. 실내에 있을 때가 많아지면서 영화나 여러 콘텐츠들을 볼 기회가 많았었다. 최근에 본 작품으론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발레리나」, 「헝거게임: 노래하는 새와 뱀의 발라드」가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선 올해가 가기 전에 글을 써 볼 예정이다. 위 영화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으론 공통적으로 '과연 (절대적) '선(善)'과 '악(惡)'은 존재하는 것이며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었다.
어렸을 때 본 영화나 드라마에선 (절대적) '선(善)'과 '악(惡)' 캐릭터가 존재하였다. 선(善)인은 계속 의인이고 악인은 계속 악인으로 진행되다 결국 악인이 죽게 되며 '권선징악(勸惡懲善)'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콘텐츠들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너무 어렸을 때였어서 최근에 느낀 감정 같은 것들을 느끼지 못해 그랬을 수도 있지만 학교에서 문학 작품을 배울 땐 확실하게 선인과 악인을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문학작품을 읽게 만들었다. 각 문학 작품 별 정리 표에도 그렇게 역할을 구분해 놓았다. 이러한 '구별'에 익숙해진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선인'과 '악인'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문단에서 언급한 '위 영화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으론 '선'과 '악'은 없는 것이며 만약 있더라도 인간들을 통해선 구별이 불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화 캐릭터들의 '입체적 성격'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선'과 '악'이 있다는 전제 하에) 아무리 선했던 사람도 본인의 상황이 위급해지거나 급박해지면 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가 말하는 악한 행동들의 예로는 흔히 살인, 사기, 욕설 등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악'한 일인지에 대해선 쉽게 판단할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제삼자 입장에서 보는 것과 직접 당사자가 되는 건 정말 '다른' 결론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이런 인간의 이중성을 비판하는 말로 흔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많이 사용된다. 살면서 한 번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은 사람이 존재할까? 이중성의 판단 조건 혹은 내로남불의 판단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 울며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모습 혹은 어린 시절 장난감, 음식을 사달라고 조르며 우는 모습을 보고 누구는 인간의 '이기심'을 보여주는 예시들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이러한 '이기심'들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성선설', '성악설', '성무선악설' 등 다양한 인간 본성의 기질에 대한 공자, 순자, 고자와 같은 학자들의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선'한 사람인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사람인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선'과 '악'이 정해지지 않는다는 지와 같은 생각들은 각자의 논리가 나름 합리적이라는 점에서 모두 이해 가능하다. 하지만 나는 '선'과 '악'을 실존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글의 제목인 '선(善)'과 '악(惡)'이란? 바로 인간들마다의 상대적 기준 혹은 '그들만의 기준'으로 부터 정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선'과 '악'을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에 존재할까? ('하나님'과 같은 '신'은 논할 대상들이 아니다.) 나는 확률적으로 0이 된다고 생각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없다'이다. 하지만 '선'과 '악'이라는 렌즈를 낀 상태로 사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나도 그랬었다. 살인은 절대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있지만 과연 누군가 당신의 부모님 혹은 자녀들을 죽였을 때도 살인자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물론 살인자를 죽이는 건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해 죽이지 않을 수 있지만 살인자를 향한 분노와 복수심이 생긴 것은 '악'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차를 타고 가다 보면 추월하며 신호 위반을 하는 차를 볼 때가 있다. 사람들은 겉모습만 보고 그 차를 욕하지만 그 안에 곧 출산할 임산부가 타고 있다면? 그들의 생각은 그대로 일까?
이처럼 우리는 본능적으로 무언가 판단하려고 한다. 이건 나쁜 것 ,좋은 것,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이쁜 사람, 못생긴 사람 등등으로 말이다. 본인도 똑같은 사람이면서 본인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사람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이나 국회의원들이 하는 짓을 보고 욕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도 회사에서 자신의 우월적 '지위' 혹은 우월한 '정보'를 통해 힘을 쓰고 싶어 한다. 이러한 모습과 습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된다면 그들이 욕했던 국회의원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천만에 말씀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불가능한 사람은 더 높은 자리에 가서도 불가능 할 것이다. 흔히 '사회생활' 혹은 '다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살아온 사람들은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의 잘못된 모습에 대해 쉽게 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또는 정치인들 또한 '사회생활' 혹은 '다 그렇게 살아'와 같은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는 사람, 예를 들어 남들은 쉽게 편법을 써서 어떤 자리에 올라가고 혹은 회사 '엠바고' 비공개 문서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을 때, '정도(正道)'를 걸어가는 사람이라면 국회의원 혹은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을 제기할 약간의 티켓이 주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도'도 사실 인간들의 자의적 기준이다. 물론 이들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기에 이중성을 보일 수 있다. 누군 이들보고 그거나 저거나 똑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고 누구는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 내 글들과 내 가치관의 주된 개념처럼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지에 따라 세상은 분명 다르게 보일 것이다. 세상은 그냥 있는 그대로 있다. 아무런 의도 없이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문제는 인간들의 시각이다. 다양한 인간들의 시각을 존중해주는 것이 갈등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나라를 다스리는 대통령 혹은 국회의원들은 각 개인이 다양성을 갖는 것을 싫어한다. 통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도 맞는 말이다. 여기서도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에 따라 나뉠 수 있다. 그냥 살든지 아님 자신들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더 받아줄 수 있는 곳으로 떠나든지.
나는 사교육에 돈을 쏟아 과학고, 영재고, 특목고에 들어간 아이들보다 대안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더 멋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암묵적인 그들만의 기준이 있는 우리나라 체제에서 벗어나 그들의 생각을 추구하는 공간에 용기 있게 들어간 학생들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이 사회엔 대안학교 혹은 검정고시 등에 대해 ' 어떤 암묵적인 그들만의 기준'을 갖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아직까진 이런 사회지만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결국 우린 모두 죽는다. 저건 잘못됐다 저건 잘한 거다 쟤는 착하다 쟤는 나쁘다와 같이 편을 나누고 싸울 필요가 없다. 나도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역시 현실은 냉정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같이 공유해주고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곁에 거의 없다. 그들만의 기준들이 있고 그게 또 정답이라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을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상대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성'이 중요하다면 다른 생각들도 '상대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당하다.
결국,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이 없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지 나와 똑같이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아쉽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