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엘 다녔다. 엄마와 할머니 모두 기독교인이셨기에 자연스럽게 교회에 다니길 시작했다. 유치원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를 거쳤다. 매주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 목사님 말씀도 듣고 친구들과 교제도 했었다. 그렇게 하나님을 믿어온지가 약 20년 정도 되는 것 같다. 신천지나 이단은 아니다. 교회나 성전, 목사님을 믿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 그 자체만 믿는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안다고 말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유치원부, 초등부 때는 당연했고 중등부를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때는 입시를 준비하느라 여러 힘든 일도 있었어서 교회엘 열심히 다니긴 했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늘 믿고 살아왔던 것 같다. 많은 경험들을 해왔고 그러한 결과 하나님을 믿지 않을 이유가 더 없어졌다.
사실 누구의 입장에서는 내가 '가짜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선들은 중요치 않다. 성인이 되었을 때 나는 교회가 싫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성전이지만 그곳에서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환멸을 느낄 때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교회에선 남들에게 그렇게 친절하게 행동하던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할 땐 교인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말씀을 전해주시는 목사님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그러면 안 된다. 가끔 교회 문제에 관한 뉴스가 나오면 정말 많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교회를 욕하는 사람들이 이해도 된다.
이것이 어떠한 직분에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책임을 지기 싫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는 것이 맞다. 최근 논란이 있는 교사 인권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느 쪽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론은 그들의 속사정을 완벽하게 알지 못할뿐더러 그것에 대해 선동당하면 안 된다. 학생의 잘못도 있지만 나도 우리나라에서 초, 중, 고를 다니면서 수많은 선생님들을 만났었다. 그중 정말 선생님이라는 책임에 걸맞았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3~4명에 불과했다. 그래서 그런 지 한쪽 편만 들어주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서도 보면, 특히 어르신들이 교회가 끝나고 본인이 먼저 1층으로 내려가거나 나가기 위해 남을 이리저리 밀치고 엘리베이터도 빨리 타려고 새치기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또, 남들보다 많이 갖으려고 욕심부리는 교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고 직접 보기도 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어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는 않았지만 그 행동을 하는 교인들을 보니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이 많이 생겨났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더욱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교회를 다니고 있기는 하다. 교회 사람들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할 때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싫어질 때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교회를 가야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를 다니며 모순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짜크리스찬'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에 꼭 가야 한다는 말이 성경에 적혀있다면 교회엘 갈 것이다. 그러나 주일을 지키는 것과 교회를 꼭 가야한다는 다른 의미이다. 아직 성경을 1회 독도 못한 사람으로서 잘 알지 못한다. 방학을 하고 성경을 한번 읽어보려고 했다. 처음엔 잘됐는데 말들이 너무 어렵고 흥미가 없어서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현재는 스마트폰에 QT365 어플을 깔아 짧은 성경말씀과 이야기를 읽는 시간을 갖고 있다. 꾸준하게 해 볼 예정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왜 믿냐? 가 가장 관건일 것이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을 이유가 더 없다. 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다. 그냥 믿는다. 이 부분이 비기독교인 또는 비종교인들이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내 MBTI나 성격 검사를 보더라도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축에 속해있다고 나온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고등학교 때도 어떤 반 아이가(친구는 아니다) 장난스럽게 하나님이 존재함을 증명해 보라고 얘기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도 생각해 봤었다. 그 후 그 아이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으로 기억하다. 믿는 사람한테만 보인다. 믿지 않는 사람한테는 안 보이고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세상도 믿는 대로 보인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맞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믿는 사람을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정말 오만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들한테 질문해 볼 것은 '양자현상'이 본인의 눈에 보이지 않고 더 나아가 우리 시대에 발견되지 않았었더라면 이 세상에 없는 현상인 것인가? 이에 대해 지금 사람들 중 부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현재 기준으론 사실이라 판명 났기에. 또 외계인이 현재 지구상에서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외계인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우리는 실체가 있어야 믿으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실체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실체를 믿느냐 안 믿느냐보단 결국 본인이 믿을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가 더 중요하다.
이성의 끝판왕이라 사람들이 칭하는 수학과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수학과 과학은 나날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발전해 왔다. '결국 본인이 믿을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연구되어 왔고 발전해 왔다. 어떤 것이 처음 나왔을 때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이며 진리라고 믿어왔다. 하지만 몇십 년, 몇 백 년이 지나 그것이 거짓이라고 판명이 났다 하더라도 그 당시 사람들은 그것이 전부이며 진리라고 믿어왔을 것이다. 예를 들어, '지동설'이 2023년 8월 7일에 발표될 예정이었다고 해보자. 2023년 8월 6일까지는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고 있을 것이다. 그다음 날부턴 사람들이 '지동설'을 믿겠지만, 8월 6일 날 죽은 사람들은 천동설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죽었을 것이다.
이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이듯 믿음도 상대적이다. 현재는 하나님의 존재를 완벽하게 증명할 수도 또는 완벽하게 부정할 수도 없는 시대이다. 그러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나를 멍청이라 생각해도 또는 이상하게 생각해도 상관은 없다. 나는 하나님을 믿으면서 좋았던 일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있고 힘든 일도 있을 것이다. 가끔 보면 자연재해나 여러 끔찍한 사건들을 근거로 하나님이나 신이 존재하였다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곳에서 또 인간의 오만함을 느낄 수 있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에너지를 뺏기면 어딘가엔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이다. 내가 사람과 머리 박치기를 하면 상대도 아프지만 내 주먹도 아프다. 이처럼 이 세상도 마찬가지다. 좋은 일들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무조건 하나님이 있다고 해서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한다고 믿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나는 내가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나의 삶의 방향성이자 태도이다. 흔히 우리가 '운'이라고 말하는 요소를 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전 나의 글들을 보면 '운'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운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어찌 보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다. 본인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부정하진 않는다. 하지만 나는 나의 지금의 '능력' 또한 운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기에 더 쉽게 받아들여진다. 아무리 내가 열심히 하고 노력했다 해서 모든 일이 이뤄지진 않았다. 그렇다 해서 내가 노력을 안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만큼 노력을 안했는데도 이뤄졌던 경험들도 수 없이 많다. 내 스스로 보잘것없다 생각한 노력도 누구한텐 엄청나게 노력한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래서 그런지 힘듦의 역치도 낮아지게 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것이 '운' 즉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살아가니 힘듦을 느끼는 부분이 매우 적다. 뒷 배경에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과 주변사람들의 긍정적인 영향이 없었다면 이렇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 전부 운으로 맺어진 관계라는 것이다. 태어날 때 내가 어느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기 또한 정할 수 없는 것이다. 고등학교는 정할 수 있겠지만 내가 그곳에서 어떤 친구, 선생님을 만날지는 운이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운으로, '하나님의 뜻'으로 뒤덮여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잘돼도 잘못돼도 '하나님의 뜻'이다. 잘됐다 생각하는 것도 누구의 입장에선 잘 된 일이 아닐 수 있으며 잘 못됐다 생각한 일도 누구에겐 행복한 일이 될 수 있다. 극단적이 예시이지만, 내가 5만 원을 잃어버렸다면 나에겐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필요한 누군가가 그 돈을 사용했으면 그걸로 그 사람은 잘된 일이다. 내가 공군사관학교에 붙었다고 해서 나에겐 잘된 일이지만 정말 사명감이 있었던 사람이 떨어졌다면 잘못된 일이다. 상대적이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잘된 일이다 또는 잘못된 일이다를 판단하지 않으려고 한다.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믿는지에 따라 모든 기준과 결과는 변할 것이다.
우리의 스트레스 또는 불만도 어찌 보면 인간의 오만함에서 나오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그 예상과 빗나갔을 때 불행을 느끼며 실망을 느끼는가? 본인이 그러한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것이 본인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다.('본인에게 도움'이라는 주제에 대해선 다음 주에 써볼 예정이다.) '바라면 바랄수록 더 얻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고집, 아집, 오만함을 내려놔야 한다. 현자처럼 매 순간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안 할 이유는 또 없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 진심을 다해 기도했던 '올백 맞기'에 대한 어렸을 때의 그 믿음이 지금까지 내가 하나님을 믿고 있는 큰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약 4개월간 정말 열심히 기도했던 것 같다. 그 어린 나이에 자기 전 침대에서 정말 열심히 기도했던 것 같다. 결국 ALL 100점을 받을 수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뤄졌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더 잘 믿어왔던 것 같다. 간절히 원했어도 이뤄지지 않았던 적도 꽤 많이 있었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만큼 간절히 원하지 않았거나 또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거나.
그냥 하는 것이다. 그냥 믿는 것이다. 모든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만을 연속적으로 살아간다. 2초 전 상황들을 되돌릴 수 없으며 그냥 현재 이 짧은 찰나에만 존재한다. 현재에만 충실히 몰두하며 살아간다면 그것은 분명 자연의 섭리,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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