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글이 티스토리 50번째의 글이다. 그동안 현실에서 쉽게 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들을 온라인상에 써봄으로써 나만의 장을 하나 만들어 보았다. 나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또 공유할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다. 앞으로의 글들은 좀 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이야기를 주로 할 예정이다. 나의 일상 이야기 또는 취미, 책, 영화 등의 이야기 말이다. 1주일에 1개 글은 꼭 쓰고 싶었다. 방학 땐 1주일에 2개 정도 여유가 된다면 써보겠다. 만약 지금까지 나의 글을 관심 갖고 읽어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있다. 지금까지 써 온 글은 어디서 쉽게 꺼내지 못했던 나의 진솔한 마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부정적인 사회 현상에 대한 비판과 의문을 품고 살아가는 한 인간이지만 나만큼은 그러한 사회 현상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낙관적으로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한다!
오늘 글의 제목은"이것만 하면 됩니다" 또는 "이게 정답입니다."등의 유튜브 썸네일 같이 자극적으로 지었다. 또한 내용도 자극적으로 적을 예정이라. 이전 나의 글들의 내용이 불편했던 사람들이라면 읽지 않아도 된다. 20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내가, 지금 현시점 '삶의 진리'라고 생각하는 2가지 진리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러한 생각들은 하루아침에 생긴 생각들이 아님은 분명하다. 어느 정도 깨닫기 전까지 적어도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들이지만 나는 그러한 생각들을 무시하지 않고 깊이감 있게 파고 싶었다. 그것만이 인간이 살아가는 본질이라 생각했기에.
내가 지금부터 말할 내용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들보다 고민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적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늘 말하는 '생각'은 '고민'과는 결이 다르다. 몇 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몇 달은 이러한 생각 주제에 대해 탐구를 해봐도 알까 말까 하기 때문이다. 마치 제대로 된 수면과 식습관을 만들려고 하지는 않고 '헬스장을 다니는데 몸이 안 좋아져요'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다. 본인은 운동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수면시간, 식단 등도 운동이다. 단순히 내일 어떤 음식을 먹을지, 어떤 옷을 입을지, 친구랑 어디서 만날지 등의 고민과는 차원이 다르다. 만약 제대로 '생각'을 한 사람이라면 절대 그렇게 행동해서는 안된다. 그건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말했던 '본인이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을 구별하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말은 늘 심금을 울린다. 소크라테스가 지금까지도 추앙받는 철학자로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로, 그는 '자기가 무언가 알고 있음에 집중하기보다, 자기가 무언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소신발언 START
<1> 세상엔 정답은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이 이야기는 이전 글들에서도 몇 번 했던 이야기이다. 그만큼 중요하다 생각하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다. 왜냐하면 이전에 나도 그래왔고 지금도 가끔 그럴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늘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세상엔 정답은 없다고 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나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좁아터진 땅 덩어리에 몇몇 도시에 밀집해서 사는 우리나라에선 더더욱 말이다. 이 현상은 가정환경도 문제지만 국가의 잘못도 너무너무 크다고 생각한다. 가정환경에서 이러한 교육을 못 받는다고 한다면 국가는 그와 관련된 교육을 해주어야만 국가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싶다. 본인들의 정치질을 통한 세력확장?이 진정 그들이 목표하는 것이라면 이 나라는 답이 없고 망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사실 그래 보인다. 정답이 없다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 그리고 청소년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세상엔 정답이 없다는 것을 모르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애초에 객관식이라는 틀에 갇혀 12년 동안 교육받은 아이들이 그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답 찾기를 누가 잘하나 또는 빨리빨리 찾냐가 제일 중요하다. 그렇게 12년 동안 공장에서 만들어진 부품이 된 친구들이 가는 곳은 결국엔 거기서 거기다. 그곳에서도 공장의 부품처럼 사용되다가 100년도 못살고 죽는다. 우리나라에선 노벨상을 받는 사람도 적고 창조를 해내는 사람들은 정말 극극극소수다. 근본적인 교육시스템을 바꿀 생각은커녕 '흉내'만 낼뿐이니 당연하다.
만약 본인이 정답만 찾고 남들이 따라가는 대로 안정을 우선시한다면 전제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의 요구에 불만을 느껴서는 안 된다. 회사에서 일을 시키면 그냥 닥치고 해야 한다. 본인이 정답 찾겠다고 들어간 직장 또는 대학원 또는 일상생활 등에서 불만을 느낀다는 것은 모순적인 모습이다. 사회가 변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사회는 나로부터 변한다. 내 행동에 따라 변하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나도 그러한 사회에 동조하고 남을 평가하는 위치라면 나도 그렇게 대우받게 됨 또한 당연하다. 그런데 본인들은 그렇게 대우받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면 개미 똥만도 못해 보인다. 개미 똥이랑 비교하기도 아깝다.
세상엔 정답은 없고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알게 된 사람이라면 본인이 어떤 행동을 할 때 '타인' 또는 '사회'라는 기준이 튀어나와서는 안된다. 오직 기준은 '나'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세상은 보이고 내가 믿는 대로 세상은 움직인다는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남들이 따라간 방식,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하나의 길, 어떤 직장 또는 차 또는 집이 정답인만을 좇을 것이다. 입시할 때 들었던 수학 인강 강사 중에 '현우진'이라는 선생님이 있었다. 그 선생님이 말한 영상을 하나 봤었는데 이런 말을 하셨다. "옆에 있는 애들이 자고 있다고 나도 자 볼까? 놀고 있다고 나도 놀아볼까? 등의 생각을 하지 말라고. 나의 기준을 남한테 맞추지 말라"라고. 뻔한 소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본인이 본인 스스로에게 솔직해진다면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내가 남을 너무 많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현우진 선생님은 열심히 하라는 의도에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나는 다른 측면에서도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학점을 잘 따려고 해도 내가 거기에 뜻이 없으면 열심히 안 해도 된다. 남들이 자격증을 수십 개 따도 내가 필요 없으면 안 따도 된다. 남들이 그 일을 굳이 왜 해?라고 생각해도 내가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것이다.
결론은 같다. 오직 기준은 '나'다. 남들은 남들의 기준이 있고 그것을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요즘 청년들을 보더라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정말 많이 없다. 사회가 전문직을 우대해 주니 주변에서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전문직 열풍의 시기와도 맞물렸다 할 수 있지만 전문직 응시자 비중을 보면 체감이 될 것이다. 그러면서 전문직이 되고 나서 현타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내가 원했던 일이 아니에요' 이러고 앉아있다. 본인이 많은 고민과 생각도 안 하고 들어간 그 당시의 모습은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자신이 대우받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할 때가 많다. 본인이 정답 찾는 것에 급급한 사람이라면 언젠간 당신이 오답을 찾았을 때 나가떨어질 것이다. 정답은 없고 각자의 정답이 있다고 믿는 상대적 스탠스를 보인다면 누구도 나가떨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사회도 정답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지 않지만 우리 한 사람들도 이러한 생각들이 떠오르면 무시해 버린다. 쓸데없다는 이유만으로. 결국 본인이 사회적으로 '가스라이팅'을 당했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쓸데없다'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다. 또 그러한 생각들은 왠지 모를 '불편함'을 주기에 우리는 스스로 바뀔 기회가 있으면서도 자기 스스로 그 손을 놓아버린다.
<2> 사람들은 본인이 곧 죽는다는 것을 모른다.
인생은 정말 짧다. 하지만 길기도 하다. 어느 시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답은 다르다. 상대적이다. 하지만 언젠가 죽는다. 최근엔 늙지 않고 세포의 재생 또는 복원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지만, 완전한 기술과 임상시험이 끝날 때까지 갈 길은 멀다. 우리는 또 죽는 존재이기에 오직 이 '현재'만이 의미가 있다. 미래는 우리가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딱 맞을 확률도 그리 크지 않다. 과거는 더더욱 의미가 없다. 과거에서 의미를 찾을 순 있어도 결국엔 오직 '지금의 나'만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면 또 모르지만 현재까지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현재'만을 살다가 곧 죽는다. 얼마 남지 않았다.
평소 나는 이전에 썼던 글들처럼 사회 문제나 몇몇 사람들의 인간성 문제가 왜 발생활까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해왔다. 그러다, 어느 정도 나만의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들이 많이 없어서이다. 이 '생각'은 위에서 말한 '맞아, 인간은 죽어 당연하지!'와 같은 단순한 생각이 아니다. '죽음'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과정일까에 대해 몇 달 아니, 몇 년은 고민해 봐야 10%도 알까 말까 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에서 죽는 한 우리의 몸은 죽지 않는다. 무슨 소리냐고? 우리는 땅에 묻히거나 납골당에 유골을 보관하거나 바다에 뼈가루를 뿌리는 등의 행위를 한다. 땅에 묻게 된다면 그 몸을 구성하고 있던 분자들이 땅으로 이동을 한다. 땅으로 이동한 분자들은 또 어딘가로 이동할 것이고 그러한 분자들은 또 농장에서 사용되는 흙이 될 수도 있다. 그러한 흙으로부터 자라난 식물들은 인간의 주된 식재료가 될 것이며 그것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자녀를 또 낳고 하는 과정이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한 상상을 하며 인간은 지구를 벗어나지 않는 한 죽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또한 우주에서 죽더라도 우주의 크기에서 생각해 보면 인간은 또 죽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죽음 관련 상상은 그만두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해보겠다.
사람들은 '인간은 죽는다'는 것을 안다고 하는데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진짜 셀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 새치기하기, 분리수거 대충 하기, 아득바득 우겨서 정치생활하기, 가족 경영을 통한 자금 세탁 및 상속, 사기, 살인, 강간, 남들보다 더 많이 갖으려고 하기, 경쟁에서 어떠한 방법을 써서라도 이기기, 자신의 행복 또는 편의를 위해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기, 주변 친구들보다 잘 살기, 아파트 전세 사기, 전세 제도를 통한 부동산 거물되기 등등. 자신이 마치 이 세상에서 평생 살 것처럼 행동한다. 자기는 절대 죽지 않을 사람처럼 이 세상에서의 탐욕을 부린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사람들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하기 전에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이 불편하다고 그 생각을 스스로 지움으로써 그런 생각을 안 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본인 자신에 대한 '기만'이다. 나도 위에서 나열한 상황들같이 '탐욕'스러운 행동을 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아간다.
솔직히 이것 또한 교육의 문제다. 초, 중, 고 학교 선생님들도 문제고 교육과정도 문제고 교육체제도 문제고 주변 환경도 문제다. 나도 가정에서 '죽음'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교육을 받지 못했었고 '학교'에서도 교육을 받지 못했었다. 이러한 교육을 어린 나이에 받았더라면 타인에게 관용적이고 베풀려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습득했을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러한 교육 말고 다른 교육들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싶다. 초등학생 땐 '받아쓰기 100점 맞아오기'가 제일 중요했고 중학생 땐 '영어 문법 암기'가 중요했고 고등학생 땐 '선행 학습을 통한 국어 수학 영어 1등급 맞기'가 중요했다. 그 누구도 '삶과 죽음'에 관해서는 교육해주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는 아이들에게 되돌아오는 말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해.'라는 말들 뿐이다.
내가 만약 내일 죽는다면 주변 타인을 시기하거나 이 세상에 못된 짓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과연 할 수 있을까? 물론, '내일 죽으니까 너네도 다 같이 죽어 내 맘대로 할 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다. 정말 그 사람들에겐 안타깝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죽어야 마땅하기에 불쌍하지 않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다르다. 나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남들에게 잘잘못을 따지는 판단이 앞섰을 때에는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남들이 지하철에서 나를 밀치고 가더라도 또 새치기를 하더라도 나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간끼리 서로 싸우며 경쟁하는 모습은 이제 나에겐 어떠한 영향도 끼치지 못한다. 기존의 나는 교육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런 사람들은 교육을 잘 못 받아서 그렇다 등등.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고 정말 그렇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거나 과도하게 나의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된다는 교육을 받고서는 그러한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교육을 했다고 하더라도 말로만 형식상으로 했을 경우가 대다수 일 것이다. 초, 중, 고 선생님들만 보더라도 '선생'이면 안 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저 사람도 나처럼 지구상에서 얼마 안 살다가 죽을 존재들인데 내가 스트레스받고 판단해서 무엇하나'와 같이 말이다. 우리는 정말 이 지구에 잠깐 머물러갔다 가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지구에서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건 '사랑과 베풂'뿐 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20살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가 더 많이 갖으려고 주변 친구보다 더 잘 나가려고 같잖은 노력들을 해왔다. 하지만 결국 남아있는 건 파괴된 내 자신 뿐이었다. 점점 악마가 되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꼭 무언가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냥 죽음을 직시하게 된 순간, 나의 소명과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좀 더 명확해진 것이다. 나보다 남에게 더 좋은 기회라면 기꺼이 포기할 수 있고, 내가 다 갖는 것보다 베푸는 것이 더 좋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 확 들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1000년 뒤 사람들은 우리의 시간들을 단 1초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삶 100년은 역사책에서 한 줄도 기록 안 될 수 있는 역사이며 시대가 그렇다면 각 개인의 상황은 더더욱 그렇다. 우리가 지금 아등바등 더 욕심부리려고 해 봤자 정말 부질없는 짓들이다.
나는 늘 내가 죽기 전에 지금의 현재를 어떻게 느끼게 될까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간다. 더 많이 갖으려면 갖을수록 자기중심적으로 살다 죽는 나의 모습처럼 안타까운 모습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늘 든다. 하루하루 정말 소중하게 살아가려고 한다. 세상엔 건전한 정치인들도 있지만 뻔뻔한 정치인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그들 스스로도 죽기 전에 알 것이다. 아무리 현실에서 자기가 이 악물고 '정도(正道)'를 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생은 정말 부질없고 의미 없었다는 것을. 이는 일반인에게도 적용된다. 지금의 당신이 하고 있는 행동 하나하나가 진정 스스로에게도 떳떳한 일인지 또 그것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일인지 진지하게 탐구해봐야 한다.
지금까지 2가지 삶의 진리에 대해 써봤다. 사실 아무리 이런 글, 영상들을 봐봤자 진정 본인이 생각하고 깨닫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러한 경험을 해보지 않는다면 절대 모른다. 절대 절대 절대 모른다. 이유는 생각해 본 사람들도 모른다고 느끼는데 생각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안다고 생각하는 건 위에서 말한 '본인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도 주변 가족들과의 관계,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 좀 더 군대보단 현실 사회에 가까운 소방서에서 여러 명 들의 선임, 동기, 후임들과의 관계 또 소방서라는 하나의 사회에서의 관계 등을 통해 긴 세월 나의 '생각'에 대한 꼬리에 꼬리를 물어보려고 했던 것 같다. 단 한순간도 무시하지 않으려 했다. 사회가 쓸데없는 짓이라 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어른들이 철없다고 말을 해도 어른들이 틀린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어른들을 믿지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어른들은 더더욱 말이다. 배워야 할 점은 배우려 하지만 어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그 사람이 지금까지의 세월 동안 어느 정도의 깊이 있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인지 느낌이 올 때가 종종 있다. 사실 그 어른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어른이 된 사람들은 나와 같은 시절이 있었고 그러한 시절에 우리 사회는 또 교육을 시켜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춘기(思春期). 나는 사춘기가 없었던 것 같다. 아 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가 사춘기인가? 흔히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어감의) 질풍노도의 시기, 중2병이라는 이야기를 어른들은 하는데 이것부터가 잘못됐다. 왜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진 것일까. 어른들 기준에서 그러한 생각은 쓸모없고 어린 생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래 아이들이 하는 것처럼 공부나하지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은 '본인 스스로 쓸모없는 인간임을 증명'해주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사춘기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당연하다. 인간이라면 모름지기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뿐더러 어른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어른들은 흔치 않고 사회마저 용납하지 않는다.
몇십 년 전 당신들처럼 그렇게 교육받아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이 지금 현시대인 것이다. 지금의 청년들과 아이들을 탓하지 마라. 저출산 문제 또는 의대 쏠림, 전문직 쏠림 문제 등등은 결국 지금의 어른들 40세 이상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의 결과물이다. 이를 우리 청년 세대에 탓하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일이며 본인들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 이는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도 뇌가 있는 인간이라면 분명히 알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면 분명히 알 것이다. 무엇을? 나도 그러한 사회에 동조했고 그런 사회를 내가 지금 만든 사람 중 한 명 임을. 결국 이러한 사태는 '정답만 추구하는 세상'에 '죽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환상적인 콜라보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다. 당연한 결과고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P.S 만약 이 글을 청소년 또는 아이들이 있다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 포함해서 '어른들이 하는 이야기는 절대 믿지 말라'는 것이다. 너의 길을 걸어가고 네가 깨달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나아가면 된다. 세상엔 틀린 건 없고 잘못된 것도 없다. 너 자신을 믿고 이 방법이 맞다고 유도하는 사람들을 전부 무시했으면 좋겠다. 결국 너만의 경험을 통한 너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남들 따라가 봤자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이고 새로운 길은 없을 것이다. 일련의 노력 과정들은 상당한 사회적 반감을 살 것이며 꽤나 힘든 과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내면은 단단해질 것이며 언젠간 빛을 발할 것이라 장담한다.
끝까지 가면 우리가 다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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