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애

LOVE 그리고 離別

by LePetitPrinceHong 2024. 12. 29.

 결혼. 나에게 결혼은 그 무엇보다도 책임감과 부담감이 부여된 행위였다. 아직 어리기에 결혼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할 나이는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우선 결혼을 하면 과연 행복할까? 에 대한 생각부터 해보았다. 그대들은 결혼을 하고 나서 행복한가? '결혼을 하는 것'과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철저하게 구분되어야 한다. 아이는 결혼을 해야만 낳을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결혼은 배우자, 즉 내가 한평생을 함께하고 같이 지낼 동반자와의 약속을 사회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인정받는 행위다. 당신은 결혼을 하고 나서 '진짜' 행복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런 재미로 사는 삶 말고 결혼 자체에 대한 행복 말이다.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행복과 결혼을 해서 느끼는 행복은 다른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합리화'를 하며 살아간다. 

 나의 환경이 특수한 케이스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결혼에 대한 부담'은 주변에서 결혼 생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확신이 들었다. '결혼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확신 말이다. 그 이유로는 내 주변엔 부부끼리 싸우거나 트러블이 많은 사람들이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내 가까운 가족, 부모님 혹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마찬가지다.(이 자리에서 폭탄 발언을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린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 친구분들 혹은 건너 건너 부부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부싸움'이 기본적으로 부부들이 갖춰야 할 덕목인 것 마냥 지니고 있다. 싸움을 하지 않는 사람을 정말 드물게 볼 수 있었는데 나의 친할아버지 친할머니가 계셨으며 TV에 가끔 나오는 잉꼬부부(?)들이 있었다.(TV에선 보여주기 식일 수도 있긴 하지만 요즘엔 싸우는 걸 대놓고 보여주는 TV 프로그램도 허다하다.)

 옛날에 나는 연애를 하면서 '싸운다'라는 개념에 익숙하지 않았었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만 사겼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상대에게 나는 싸움을 걸지도 않았을뿐더러 대부분의 아니 100%에 달하는 모든 것들을 맞춰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좋아해서 사겼기 때문이다.('사랑해서'라는 표현은 일부러 뺏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을 맞춰주는 게 나에게는 너무 당연했으며 그들에게 잔소리 혹은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껴도 싸우는 모드로 툴툴대지 않았다. 나도 내 상대에게 정말 잘했어서 그런지 상대가 나한테 짜증을 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나에겐 이러한 연애가 너무 자연스러웠고 당연했다.

 하지만 전여자친구는 달랐다. 그렇다. 가장 최근까지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다. 이 이야기를 티스토리에 할까 말까 고민을 수십 번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 또한 나의 젊은 시절 소중한 경험이자 또 나의 순수(?)했던 시절의 기록이 될 것 같아 작성하기로 했다. 티스토리엔 사생활과 관련된 내용을 많이 올리지는 않았었는데 오늘의 내용이 가장 사적이며 내 연애 상황을 덤덤하게 작성해 나갈 첫 글이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이 미래에 나의 약점으로 혹은 안 좋은 쪽으로 영향을 줄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곧 다 죽을 인간들이고 나도 죽고 당신도 죽고 우리 모두가 100년만 지나도 잊힐 사람들이지 않는가.

 앞으로 쓸 내용들은 굉장히 감정적이고 우울하고 편협하고 또 개인적인 내용일 수 있음을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지금은 꽤나 무덤덤한 상태다. 전 여자친구와 약 6년을 사귀었으며 이별까지 고민하고 확정 짓는데 까지 6개월이나 걸렸다. 나도 나름의 결단력 있는 판단을 한 상태고 이는 잠시 헤어졌다 만나는 그런 커플들의 상황이 아님을 확실하게 말해두고 싶다. 이 글을 전여자친구가 읽을지 읽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편향되지 않게 써 볼 예정이다.(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내가 느낀 감정을 담은 글이니 이해해 주도록)

 나의 이별 이야기를 주변 사람에게 공개한 지 약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워낙 성격이 지독한지라 그동안 내 주변사람들 모르게 티를 내지 않고 지내왔다. 가족을 만나도 잘 지내고 있는 척 친구를 만나도 잘 지내고 있는 척 다른 사람이 물어봐도 연애를 하고 있는 척. 사실 연애를 하고 있던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에 연애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그 관계의 위태로움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가 될 때까지 숨긴 이유는 (다들 나의 글들을 자주 읽어봤던 사람이라면 알 수 있듯이) 주변 사람들 말에 휘둘리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의 의견을 듣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가 싫었고 누구의 조언이나 위로, 공감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나의 내면과 나의 생각에 온전히 집중한 뒤 내가 스스로 맺거나 끊고 싶었다. 나의 마음이 타인 혹은 외부환경으로부터 흔들리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싶어 티를 내지 않았다. 진짜로 헤어진 뒤에도 몇 주 뒤 (후유증마저 덜해진 뒤)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여자친구와의 관계를 물어보는 사람들에게만 말했지 물어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또 내가 굳이 이런 얘기를 해야 할까 싶은 관계와의 만남에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이제부터 나의 사랑 방식과 이별 이유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위에서 하던 말을 마저 하면, 커플 및 부부들의 싸움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전여자친구와(앞으로는 D라 표현) 그렇게 많이 다툴 줄 몰랐다. 나도 이상했던 게 그렇게나 많이 다투면 헤어지는 게 나았을 텐데 어떻게 버텼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나는 D와 사귀는 초반 1년 반 중 약 절반 정도를 싸우며 보냈다. 나도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가 없다... 여하튼 나는 일단 나에게 싸움을 유발하는 D가 정말 이해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D가 나를 먼저 좋아해서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나를 좋아해 준 사람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사귀었지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과 사귀진 않았었다. D는 나를 먼저 좋아해 내 번호도 물어보고 연락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귀게 된 것이었다. 그런 그녀와 수도 없이 싸웠다. 그녀의 입장에선 서운함과 아쉬움이 있어 여자친구로서 툴툴대거나 불평불만을 제기할 수 있지 않냐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나는 좋아한다는 사람이랑 싸우는 것에 대한 이해를 전혀 할 수가 없었다.

 맨 처음에 말한 문제가 여기서 발생한 것일까? 부부싸움 말이다. 나도 내가 연애를 하면서 이렇게 많이 싸울 줄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최근의 연애를 하면서 부부 혹은 커플들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어느 정도'라는 것이다. 솔직히 아직까지 이해가 잘 되진 않는다. 나도 워낙 많이 싸워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앞으로의 연애에선 싸울 일이 정말 적었으면 좋겠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나와 결이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맞는 사람을 만나거나 아님 둘 중에 한 명이 감수하거나 포기하면 될 것이다. 나는 치고받고 싸우는 연애는 더 이상 할 체력도 마음도 없다. 진짜 지쳤다. 초기 일 년 반 중 절반을 싸웠다고만 했지 이후의 싸움은 아직 꺼내지도 않았다. 이전만큼은 아니었지만 정말 징글징글하게 싸웠다. 

 그래서 그런 것이었을까, 그녀와의 애증적 관계 혹은 그런 숱한 시간들을 지내왔어서 그런지 D와의 이별은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나도 힘들었다. 우선 헤어진 이유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배신감을 느꼈고 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배신감. 정말 오랜만에 느낀 감정이었다. 가족을 제외하면 워낙 사람을 잘 믿지 않으며 기대를 안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배신감과 서운함을 느낄 일이 현저하게 적었다. 상대가 내 마음에 쏙 들길 기대한 뒤 실망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낫다. 실망할 일도 없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엔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한데 오히려 기대를 했다가 나만 상처받는 상황이 너무나도 많이 일어난다. 나도 실제로 많았고 그러면서 상대가 바뀌길 바라기보다는 내가 바뀌는 게 더 편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D를 어느 정도 믿긴 했지만 가족을 믿는 수준과는 차원이 달랐었다. 오히려 친구 혹은 아는 사람 수준에 가까운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불쑥 커지게 된 시점은 2022년 겨울쯤으로 기억한다. D에게 모자를 손수 떠줄 때 쯤이었다. 도안을 인터넷에서 찾고 뜨개질 영상을 찾아보고 배우며 난생처음 모자를 떠 선물해 줬다. 연애 5년 차에 말이다. 1년 차 2년 차 때는 어느 커플이라도 그 정도의 노력은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ㅎ. 하지만 5년 차까지 갔는데도 손수 모자를 떠준다? 내가 받는 당사자였으면 진짜 감동했을거다. 이전까지도 D의 사랑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군대 전역을 앞두고 확 와닿았던 것 같았다. 내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하늘 높이 치솟았었다.

 2023년 복학을 한 뒤 그 감정은 더 격렬해졌다. 어느 정도였냐면 뿌리깊이 박혀있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흔들고 바뀔 정도였으니 말이다. 부부들이 싸우는 모습 혹은 부부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하지 않기로 다짐했던 내가, D와 수백 번을 싸웠음에도 또 그때까지도 싸울 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것들을 다 감수하고 D와 결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D는 엄청나게 서운했겠지만 나를 많이 사랑해 줬던  같기도 하다. 사귀고 나서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 (연애 초기엔 커플들끼리 그런 장난도 많이 친다) 혹은 농담을 할 때도 나는 진지하게 말했었다. 나는 비혼주의자고 너랑 결혼을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누구와도 결혼하기가 싫다라고. D는 상처를 많이 받았었지만 그래도 어렸어서 그런지(?) 혹은 언젠가 나도 변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서 그런지 나와의 연애를 이어나갔다. 

 우선 결혼에 대한 가치관 형성에 부부싸움도 어느 정도 영향은 있었지만 '법적 구속' 자체에도 불만이 있었다. 국가가 왜 우리가 결혼을 한 것에 대한 '법적 책임'을 부여하냐에 대한 불만이었다. 나는 이 정도로 누군가 혹은 집단의 구속을 싫어한다. 나의 삶에 국가라는 거대한 신념이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법적인 구속 자체가 나에겐 스트레스였고 국가가 뭔데 나에게 그런 의무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다. 또한 왠지 모를 책임감도 느껴졌다. 내가 한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고 배우자를 또 미래엔 자녀를 이끌어 갈 가장이 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해 보지도 않은 결혼을 하는 것에 대한 용기가 없었으며 또 결혼생활은 완벽하게 이뤄내고 싶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나의 이 모든 가치관을 깨부순 것이 D였다. 사실, 나는 이 가치관이 깨질 줄은 몰랐다. 나는 D에게 정말 최선을 다했다. 부모님 혹은 후원자 그 이상으로 나의 시간과 돈 애정 정성 진심을 쏟아부었다. 2023년 한 해는 나에겐 연애에 최선을 다한 해라고 기록해도 될 정도였다. D를 보는 것이 너무나도 좋았고 감사했다. 단적인 예로 D의 생일날 엄청나게 추웠고 눈보라가 치는 날이었다. D의 생일이 나의 종강날과 겹쳤었다. 나는 D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러 가기 위해 마지막 시험이 끝나자마자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탄 뒤 인사동으로 향했다. 영하 10도까지 내려갔던 날씨였다. 귀가 찢어지게 아팠지만 15분간 걸어가며 눈보라를 뚫고 인사동에서 미리 예약한 케이크를 픽업한 후 퇴근길 지옥철에 탑승하여 집까지 약 50분 걸려 돌아왔다. 시험기간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마지막 시험까지 쳤으니 말이다. 집에 돌아온 뒤 미리 써둔 편지와 미리 준비한 선물(이 선물도 약 2개월 전에 미리 사놓고 그때까지 비밀을 유지하고 서프라이즈를 해주기 위해 꼭꼭 숨겼었다)을 챙겨 D집으로 향했다. 지하철 타고 가려다 가다간 정말로 쓰러질 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갔다. 이후 그녀의 생일날 생일 상을 정말 근사하게 차려줬다. 워낙 요리도 꽤 해서 그 요리 실력을 맘껏 뽐내주었다. 놀라운 건 위와 같은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 전혀 힘이 들거나 약간의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뭔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써서 그때의 나의 노력과 진심이 잘 담기진 않은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이것이 나의 최고의 진심이 담긴 행동임을 알 수 있는 근거로 다시는 그런 일을 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도 믿기지가 않는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던 것인지 말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도 그 정도로 해 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노력이었다. 물론 내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며 해 주겠지만 웬만한 애정과 믿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단적인 예였지만 나는 이 정도로 D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전부 해줄 수도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더 나아가 장기적인 목표까지 그녀가 원하는 것이 소소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사는 것이라면 나의 기존 꿈과 목표를 양보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웬만해서 흔들리지 않았던 나의 모든 가치관들이 2023년에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결과로 D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러나 위기는 예상치 못할 때 찾아왔다. 역시 기대를 하면 실망을 하게 된다. 역시는 역시 역시다. 우선 내가 착각했던 사실, 난 그녀가 다른 여자들이랑은 '다를 줄 알았다'. 어떻게 이런 사람이 나에게 찾아왔으며 나를 사랑해주지 싶을 정도로 감사함을 느끼고 이런 사람이 나의 삶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내가 이전에 만났거나 스쳐지나왔던 사람들 혹은 보았거나 들었던 이야기들의 여자와는 확연하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정확하게 틀린 예측을 하고 있었다. D도 그냥 일반 여자였고 그다지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 괜한 장미 한 송이에 내가 집중을 해서 그렇게 보였던 것뿐이었다.

 2024년이 나의 삶에서 가장 힘든 경험을 하게 될 해가 될 줄 상상도 못 했었다. 앞으로도 힘든 경험이 있겠지만 그것에 대한 나의 믿음과 진심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믿음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할 것이기에 덜 힘들 것이다. 군대와 같은 누가 칼 들고 협박한 상황은 인생에서 흔치 않다. 괴한이나 나쁜 사람들을 만나서 물리적 위협을 받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일들은 본인이 어떤 하고자 하는 일 혹은 욕심 때문에 스트레스나 힘든 경험을 느끼는 것이지 않는가. 하고자 하는 욕심을 줄이거나 마음을 비우거나 욕심을 내지 않으면 인생은 편해진다.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것이기에 2024년의 일들 보다는 힘들 일이 거의 없을 것 같다.

 힘들었던 이유는 가족이 아닌 타인에 대한 엄청난 신뢰와 사랑을 주었던 사람이 D였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대를 하지 않아야 실망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그러한 신뢰와 사랑을 보냈고 그런 과정 속에서 신뢰가 왜 중요한지 또 사랑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헤어져서 합리화가 된 것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타인에 대한 진심 가득한 신뢰와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나의 연애가 끝났더라면 정말 아쉬웠을 것이다. D를 알기 위해 시작한 우리의 사랑은 나를 알고 끝을 맺었다. 

 2023년처럼 사랑에 진심을 다한 해는 없었다. 이전에 그렇지 못했던 이유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었고 또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랑에 대한 고민을 한 시점은 군대 선임과의 대화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전부 꺼내기엔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간략히 얘기해 보겠다. 군대 선임은 사랑이야 말로 인간이 살아가는 원동력이며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라고 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나는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사랑도 결국 조건이 붙는 일이며 조건이 붙는 것들은 의미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좋아하는 혹은 사랑하는 연인이 지금과 다른 외모, 정말 괴물같이 생겨도 당신은 그대로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가? 성격이 갑자기 괴팍해지거나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면모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 '자체'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가? 나는 그럴 확률이 0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랑도 본인이 좋아하는 외모, 성격, 원하는 조건을 보고 난 뒤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사랑 또한 다른 가치들과 별반 다름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당시 선임은 내 말에 공감을 해주지 못했었지만 1년 뒤 나의 말을 이해해 주었고 또 자기도 이젠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었다. 아마 그 선임도 이전에 사귀었던 사람과 이별을 했어서 그런지 그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2023년에 그 당시 선임이 해 준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인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이며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에서 마저도 너무 냉철한 판단을 했던 나는, 2023년 연애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하며 변해갔다. 마치 내가 연애 초반 혹은 사랑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때로 돌아간 것 같은 마음이었다. 어렸을 때 내가 원했던 사람은 내가 나락에 떨어져도 나를 놓지 않고 지켜줄 사람이었다. 우리 부모님과 가까울 정도의 신뢰와 응원을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면 나는 사귀고 싶지도 또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D 이전에 사귀었던 여자친구들에게 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었다. 그들이 나락을 가고 힘들어하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기에' 나는 해 줄 자신과 용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 느꼈던 나의 감정들이 2023년에 다시 올라왔었다. 나를 먼저 좋아해 준 누군가를 위해서 말이다.

 2024년 초 D에게 여러 변화가 있었다. 그녀는 25살까지 이런저런 시련이 많았었다. 친구, 학업, 공부, 가정, 멘탈 등 꽤 불안정했었다. 연애 초 나는 이런 것에 대해 꽤 힘들어했었다. 기만적인(?) 소리지만 나는 안정적인 가정, 멘탈을 보유하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에 D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나는 그냥 평범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면 됐었는데 D에게서 오는 부정적인 감정과 스트레스가 너무나 힘들었었다. 그렇게 여러 위기와 고민이 가득했던 D에게 연세대 편입 성공이라는 좋은 결과가 찾아왔었다. 여기엔 나의 노력과 영향도 꽤 있었다. 편입 권유를 한 사람도 나였고 공부를 하지 않는 그녀를 위해 도움을 계속 주려한 사람도 나였고 잔소리를 해주며 도와준 사람도 나였다. 원서도 다 검토해 주고 원서 접수날까지 프린트해 주고 우체국에 가 서류 보내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도 나였다.

 사실 나도 원서를 넣을까 고민도 했었다. 하나님께 맹세를 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괜히 엄청나게 하고 싶지 않은 편입에 대한 원서를 나도 넣었다가 나만 합격하고 D만 떨어지면 그때 또 D가 절망감과 실망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편입은 논술이나 시험으로 이루어지는데 나는 그전 대학교도 논술로 합격했었고 삼반수 시절 연대 논술도 예비 4번이었었다. 심지어 한 문제는 시간이 없어 쓰지도 못했었다. 입시 논술을 각 잡고 배운 적은 없었지만 꽤나 운이 좋았던 것 같았다. 자만이지만 이런 내가 논술을 썼다가 나만 붙으면 D가 본인에 대한 또 한 번의 실망을 느끼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그래서 그녀만을 열렬히 응원해 주기로 다짐했고 끝까지 서포트해 주었다. 결국 그녀는 합격을 했다. 합격을 한 뒤 나는 누구보다도 좋아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나였고 이제 그녀가 부정적인 감정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 살아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본인의 상황이 여유로워지고 의지가 생기자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 이것저것 전부하려 했으며 친구들과 놀기, 동아리에 참여하여 시간 보내기, 친구들과 시험기간 밤새기, 이성친구 무리와 어울리기 등등 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와 나의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옛날 대학에 다니던 시절, D가 나를 너무 좋아하고 집착(?)이라 생각할 정도로 나를 사랑했었던 것 같다.(지금 생각하면 그건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재수를 끝내고 들어간 학교에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동아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이성친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 전부를 질투했었다. 지금생각하면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그 당시에도 했었기 때문에 나는 여자친구가 더 좋았기도 해서 여자친구 말을 최대한 따라줬었다. 그녀가 싫어하는 행동을 최대한 하지 않으려 했다. 꽤나 만족했던 대학생활이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다 해보진 못했었다. 그녀가 원하는 모습을 위해 나는 나 스스로를 바꿔야만 했고 노력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좀 더 안정적이고 오랜 기간 신뢰를 다져온 시점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D는 '내로남불'이었다. 그녀는 올챙이 시절 했던 것들은 생각하지 않고 개구리가 되자 행동을 달리 하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관계를 근거로 이 정도도 이해를 못 해주냐는 식의 독단적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가 애초부터 그런 성격과 나에게 그런 것들을 원하지 않았으면 나도 그녀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엄청난 제한과 '그것이 사랑'이라며 강요를 했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D가 친구와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또 동아리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또 이성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것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자 그녀는 왜 아직까지도 그러냐는 식으로 우린 안정적이니 걱정 말라고 하였다. 여기서 한 마디 더 하자면 이전 대학을 다닐 때부터 최근까지도 나는 여자 사람 친구가 0명이었다. 진짜 0명. 그녀가 전부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도 하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이전에는 가끔 하다 미안함을 보이기라도 했지만 편입을 하고서는 대놓고 하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이라나 뭐라나.

 이런 상황이 반복되고 개선이 없어지자 나는 그녀에게 점점 실망하기 시작했다. 또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들어 놓은 것들을 D의 욕심 때문에 망가져가는 현실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녀도 나름대로 노력은 했겠지만 나에겐 턱없이 부족했다. 이전의 그녀는 나에게 에너지 100중 80을 썼다면 그때는 20을 썼었다. 나는 100중 80을 쓰다가 80을 못쓸 것 같으면 나머지를 포기하거나 에너지 100을 200으로 늘려 똑같이 80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것들을 포기할 노력도 에너지를 늘릴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시기가 아마 3월 말이었던 것 같다.

 3월 말부터 나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실망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그때까진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나도 최대한 관계를 회복해 보려고 노력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들이 자꾸 생겨났다. 친구 문제, 동아리 문제, 이성친구 문제 등등. 그녀는 이해라는 그녀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거기에 나를 또 맞추고 싶어 했다. 내가 그녀에게 불만이나 서운함을 제기하면 그녀는 '왜 이것도 이해를 못 해주냐'는 식의 태도였다. 

 그때부터 나의 멘탈은 많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1학기 중간 기말고사를 어떻게 봤는 지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런 상황이 되풀이되자 결국 나는 6월에 그녀에게 이별에 대해 처음으로 이야기했었다. 사실 그 당시에 내가 그녀를 2023년에 사랑했던 마음이 이미 반토막이 나 있었다. 3월 중순부터 6월 중순까지 D가 했던 많은 일들이 내겐 상처였고 그녀의 무책임하고 자기만 생각하는 그 이기심이 우리 관계를 다 망친 것이었다.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한 나의 노력은 점점 물거품이 되어가 버렸고 결국 그녀에게 이별을 얘기하게 됐던 것이다.

 어찌 보면 그때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난 샘이었다. 하지만 지내온 시간이 있어 그렇게 단칼에 자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D가 미안하다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2배 이상 노력을 하겠다고 했지만 이후에 변한 것은 없었다. 그녀는 또 며칠 뒤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 시작했고 난 또다시 이별을 말했다. 그녀가 또 사과를 했다. 미안하고 진짜 이번엔 안 그러겠다고. 

 사랑엔 비이성적 행위가 가득하다. 원래의 나라면 단칼에 잘랐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두 번째 이별도 실패(?)하고 다시 잘 지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질병인 것처럼 또 문제가 터졌고 그땐 이전보다는 더 쉽게 이별에 대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그녀에 대한 나의 정과 진심 그리고 사랑은 20%도 채 남아있지 않았던 것 같다.

 이는 그녀의 교환학생 목표와도 연관이 있었다. 우선 그녀는 연세대 편입 이전에, 다른 학교를 빨리 졸업한 뒤 나와 해외든 어디든 가서 살기로 다짐을 했었던 상태였다. 둘 다 2년의 학업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후딱 마무리하고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나도 열심히 2023년 2학년을 보냈고 그녀와 2024년부터 3, 4학년을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대 편입 후 기회가 많아졌음을 실감했는지 그녀는 교환학생까지 가고 싶어 했다. 교환 학생을 가면 졸업은 무조건 늦어짐은 분명하고 최소 6개월 보통 1년이 늦어지는데 D는 교환학생을 1년이나 가고 싶어 했다. 그녀도 그녀만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전에는 나와 약속한 그 사람이 상황이 바뀌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간의 약속을 깨 부순 것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점점 파국으로 치달았고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 노력을 하기가, 신뢰를 주기가, 사랑을 쏟기가 힘들어졌다. 2학기 개강을 한 뒤 진지하게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 진짜 이별 선언을 하였다. 이별을 고민했던 이유는 아직까진 미련이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별로 인해 슬퍼하는 것이 나를 더 슬프게 만들었고 아직 나를 조금은 좋아해 주었기 때문에 더 슬펐다.  그녀와 사귀면서 나는 내가 살면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이 정도로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사랑을 받았고 또 그 과거를 놓기가 싫었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제삼자 입장에서 멀리 떨어뜨려놓고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도 사랑하지도 또 그녀에게 기대도 없는데 내가 그녀와 사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이제는 그녀가 친구랑 놀아도 아무 생각도 안 들고 동아리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때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이성친구와 논다고 해도 화나 서운함도 느끼질 않을 지경이었으니. 모든 정과 기대가 다 털린 상태였다.

 나는 그녀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모든 사람에겐 장점과 단점이 있기에 단점은 감수하며 장점을 취하면 된다. 한때 나는 그녀의 단점을 감수하고 장점을 바라보고 결혼까지도 생각한 사람이었지만 이제 그녀는 장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존재였다. 내가 그녀와 사귈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마음을 정리하고 이젠 돌아가지 않을 선택을 하였다. 그것이 그녀에 대한 나의 마지막 존중이었다. 일부러 질질 끌다가 상처를 줄까도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에게도 좋지 않을 선택이었다. 이별 이후 그녀는 나에게 며칠간 전화도 하고 문자도 했었다. 나도 정말 슬펐다. 휴대폰에 남아있는 기록들 사진들 문자들, 또 받은 선물들 편지들이 나를 계속 아프게 했고 다시 돌아갈까라는 생각도 계속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 마음이 복구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나가떨어져 있었다. 이별하고 나서도 나는, 그녀에게 네가 교환학생을 다 다녀오고 졸업을 하고 이젠 하고 싶은 일이 줄어들었을 때 그리고 나 또한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보고 별로면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를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나는 다시 돌아갈 일도 그녀와 결혼할 일도 없을 것이다. 

 뒤늦게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D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늘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결핍과 욕망이 가득했고 나와 사귀는 와중에도 그런 면모가 계속 드러났다. 이것을 나는 감수하려 했던 것이지만 그 선을 넘어버린 것이었다.

 그녀의 과거의 사랑은 '진심'이 아니었던 것이다. 결핍, 불안, 부정적 감정, 우울로부터 오는 남에 대한 집착과 애정이 과연 사랑일까? 본인이 여유로워지고 심적으로 안정된 상황에선 본인의 하고 싶은 것들 본인의 삶이 더 중요해졌는데. 그렇게 변한 그녀에게 '사랑'이라는 가치는 저 후순위로 밀려나버렸다. 

 나였으면 결핍, 불안, 부정적 감정, 우울에 갇혀있던  자신을 꺼내주고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함을 느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손쉽게 포기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D는 달랐다. 그녀는 물질적 혹은 학벌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게 되자 결핍과 우울, 불안으로 힘들었던 과거를 부정하기 시작했고 그때 도와준 사람에 대한 감사함을 잊기 시작했다. 그 당시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을 들어보면 이는 명백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나의 최근 연애가 막을 내렸다. 대학 졸업을 할 때까지 또 연애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바로 연애를 하고 싶지는 않다. 인간은 너무나도 이기적 존재고 본인밖에 모른다는 것을 이번 연애를 통해서도 깨달을 수 있었다. 본인의 삶이 왜 그렇게 중요한지 왜 이렇게 하고 싶은 일에 목매달며 사랑하는 관계까지 파괴시켜 버리는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원래 사람을 잘 믿지 않은 내가 그녀를 사랑하면서 믿었지만 결국 초기에 나에 대한 확신으로 돌아와 버렸다.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 나에겐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지만 D를 통해 더더욱 확신이 생겼다. 세상엔 본인이 여유가 생기면 이전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정말 차고 넘친다. 그래서 이것이 평소에 내가 여유가 없을 때도 여유를 갖으려고 노력하는 이유다. 

 모순이 인간의 본성이라고는 하지만 남을 상처줄만 할 정도의 모순도 본성일까? 모순은 그냥 인간들이 합리화하기 편하려고 만든 용어다.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별로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모순이라는 특징을 만들어 그것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모순은 인간의 가장 추한 특질이다. 

 나는 그녀로부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또 나는 그녀가 이전까지 나에게 주었던 사랑은 전부 가짜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당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본인의 결핍과 욕구불만을 타인을 통해 충족시키려는 것일 뿐. 이건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의 기록도 사진도 편지도 전부 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사진과 편지 속엔 내가 담겨있었다. 그 당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흔적들이었다. 그녀와의 추억이 그리워서 편지나 사진을 지우지 않는 게 아니다. 그 당시의 내가 그립다. 그래서 다른 물건은 전부 돌려주거나 버릴 것이다. 온라인상에 있는 커플 관계도 다 지울 것이며 카톡도 인스타도 번호도 지울 예정이다. 마치 나의 삶에서 없었던 사람처럼 말이다.

 너무 감정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너무나도 무덤덤한 상태이기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최고조의 감정적 스트레스와 고민을 겪은 지 6개월도 더 됐다. 내 마음이 99% 정리가 된 상태가 되었을 때 나의 상황을 주변인들에게 밝힌 것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다.

 이것이 나의 연애의 결말이다. 나는 비운의 주인공도 또 어떤 공감을 필요로 하는 사람도 아니다. 이런 경험을 내가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또 시간이 지나고 보니 별일이 아니긴 하다. 시간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D와 설령 다시 마주하게 되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나와 D는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아왔을 것이기에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누구를 사귈 때 외적 끌림 빼고는 기준이 있던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 웬만한 것들은 맞춰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D와의 장기연애를 끝내고 나도 나름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기준이 생기면 연애하기도 어려워지는 법이다. 이 기준은 기회가 된다면 조금씩 이야기해 볼 예정이다. 

 올해 마지막글로 'LOVE(사랑) 그리고 離別(이별)' 이야기를 선택하였다. 올해 정말로 많이 힘들었기에 내년에는 싹 다 잊고 새 출발을 하고 싶다. 새 시작, 새사람의 의미가 좀 더 와닿는 연말이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상대방들이 아닌 나를 위해 좀 더 집중하고 시간을 쏟아보고 싶다. 졸업 전 약 1년간은. 나 스스로도 재 정비하고 이루고자 계획한 목표들을 하나씩 해 나갈 예정이다.

 끝으로 연애 초 카톡 배경사진으로 처음 올렸던 사진을 공유해 보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2018년 12월 22일 배경사진이다. 비록 D와의 관계는 끝났지만 '모든 순간은 아니어도 오랜 시간 함께이기를'이라는 문구대로 행할 수 있어 뜻깊었고 의미가 있었다. 이 또한 삶의 중요한 경험이자 의미 없는 짧은 인생 속 느낄 수 있는 인간다움이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긴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해드린다.

'연애' 카테고리의 다른 글

D-0  (0) 2023.02.26
발렌타인 데이... 그리고 몸살  (2) 2023.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