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예비군 훈련 후기(feat. 학생 예비군)
23년 1월 군 전역을 한 뒤, 예비군 훈련을 처음 다녀왔다. 1달만 일찍 전역했어도 예비군을 23년에 바로 갈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1년 4개월이나 기다렸다. 좀 더 어릴 때 선배 형들이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는 것을 보며 '저 날이 언제쯤 올까'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예비군은 우리나라의 중요한 국방 자원 중 하나다. 군을 전역하고도 아마 6년인가 7년 동안 예비군 훈련을 받는다. 다행히 나는 아직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중이라 학생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다. 학생 예비군은 하루 약 8시간 동안 진행되는데, 2박 3일 동안 훈련을 받는 일반 예비군 훈련에 비하며 정말 꿀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짧더라도 예비군 훈련을 가기가 너무 싫었다. 귀찮음도 있었지만 나름 재밌게 듣고 있는 물리학과 수업을 빠진 다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몇몇 교수님들은 예비군 훈련을 받고 온 학생들을 배려해 강의 영상을 올려주시거나 코로나 시기에 사용하셨던 온라인 강의 영상을 올려주신다. 하지만 이 또한 교수님들의 의무사항은 아닌 것 같아, 올려주시지 않는 교수님들도 꽤나 있다. 뭐 하루정도 빠진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그래도 수업 이해도에 있어 약간의 간극이 발생하기에 수업을 듣고 싶었다. 예비군 훈련으로 인해 듣지 못하게 된 것이 너무나도 싫었다.
학교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려 수업 때 녹음이 가능하다고 한 학우의 연락을 받아 그 익명의 친구로부터 녹음 파일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감사의 의미로 소정의 커피 쿠폰을 보내주었다. 예비군 훈련도 받느라 시간을 썼는데 수업 녹음 파일을 듣기 위해 또 시간을 써야 했다.
나는 군대 및 예비군에 대한 처우와 인식 또 군조직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문화가 바뀌어야 더 긍정적인 국방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인들에 대한 사회적 혜택, 사회적 인식이 지금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군인이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물론 있지만 그것으론 부족하다. 또한 예비군들에 대한 처우도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훈련 부대 내 예비군들을 교육시킨 조교들의 예비군을 향한 대우가 정말 좋았다. 그 결과 많은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온 사람들도 서로에게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선순환이 필수적이다.
만약 예비군을 다녀왔는데 그에 대응하는 보상을 줬더라면 많은 불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뭐 하루 일했다고 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8시간 예비군을 다녀와 받은 것은 단돈 16000원뿐이었다. 이게 말로만 8시간이지 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훈련소로 가는 과정과 그곳에서부터 다시 집으로 오는 경로는 최악이었다. 이제부터 예비군 훈련 날의 나의 모습을 서술해 보겠다.
6시 기상- 이게 무슨 일,,, 9시까지 입소를 해야 한다고 해서 집에서부터 훈련장까지 가는 교통수단을 찾아보았다. 무려 1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나왔다. 더 놀라운 건 내가 사는 곳과 훈련장의 '구'가 같은 구였다.(예를 들어, 동작구) 그런데도 훈련장까지의 교통이 최악이라 그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었다. 택시비는 3~4만 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말 오랜만에 6시에 일어나서 씻고 그 전날에 사둔 빵을 먹고 출발했다.(빵 안 먹었으면 큰일 날 뻔) 태어나서 논산 훈련소를 제외하면 3번째로 입어보는 군복이었다. (훈련소 퇴소식, 여자친구와 전역 사진 촬영, 예비군 1년 차).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중간에 환승도 하며 약 1시간 30분을 달려갔다. 물론 학생 예비군을 위한 차량이 학교에 배치되었지만 학교 근처에 살지 않아 교통수단이나 학교에 가 셔틀을 타나 똑같았다. 아침 직장인들이 많은 출근시간의 모습은 언제나 바빠 보였다.
훈련소 도착- 버스가 훈련소 정류장에 도착하자 같이 군복을 입고 탄 학우들이 내리기 시작했다. 버스 정류장에서 약 400m를 걸어 올라갔다... 훈련소에 도착을 한 뒤 QR코드를 활용한 설문을 작성하였다. 점심은 A, B 두 가지로 되어있었는데 나는 닭갈비가 나오는 A를 선택하였다. 임의로 조 편성을 받은 뒤 강당에 모였다. 강당에서 전투모와 탄띠를 받은 뒤 여러 설명들을 듣고 조끼리 모여 훈련을 시작하였다.
훈련 시작- 훈련은 총 6가지로 되어있었다. 안보교육, 화생방교육, 시가지전투, 야산전투, VR전투, 총기발포훈련으로 이루어졌다. 우리 조는 화생방 교육을 먼저 받기로 했다. 맨 처음엔 화생방을 들어가나? 생각했는데 정말 다행히 아니었다. 방독면을 쓰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재밌는 게 불과 3년 전 논산훈련소에서 썼던 방독면이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구닥다리에서 현대판 방독면으로 변경됐다. 사진을 첨부하였다.
화생방 훈련을 무난하게 마친 뒤 시가지 전투를 하러 갔다. 아, 이 예비군 훈련의 가장 큰 지루함은 대기 시간이었다. 무슨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려고 줄 서는 것 마냥 훈련을 받으려면 똑같이 먼저 온 조를 기다려야 했다. 시가지 전투는 약 50분 정도 기다렸던 것 같다... 대부분 핸드폰을 하며 기다렸다. 시가지 전투는 컨테이너 박스, 자동차, 엄폐물 등이 배치된 작은 동네 같은 곳에서 전투를 하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수련회 가서 하던 서바이벌 게임 느낌인데 더 사실적이고 재밌었다.
실제 총과 똑같은 무게의 총을 지급받는다. 이 총은 전자 레이저 센서가 있는 총이었는데 모든 예비군 훈련생들은 전자 센서 장비를 하나씩 착용한 다음에 이 전투를 진행했다. 이 전투 장비는 적으로부터 전자총을 맞았을 때 부상 정도가 경상, 중상, 사망인지 음성으로 알려주며 각각의 상태마다 해야 할 조건들이 있다. 경상과 중상은 총기의 격발이 몇 분 간 되지 않아 숨어 있어야 하며 사망은 그 즉시 시가지 전투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조 내 팀원들과 작전을 짜고 다른 조와 전투를 시작했다. 통과조건을 가뿐히 달성한 뒤 시가지 전투를 끝냈다. 방송이 나왔는데 3명 정도 죽인 것 같았다. 중간에 팀원이 누가 누군지 얼굴이 기억이 나지 않았어서 골목에서 튀어나온 팀원에게 총을 발사했다 ㅋㅋ. 진짜 서로가 깜짝 놀랐다. 물론 총은 나만 쐈다. 팀원에게 총을 쏘면 팀 점수 감점이 되기에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점심 식사- 점심으로 나온 도시락이다. 나름 괜찮았다! 점심시간이 약 1시간 30분 정도라 30분간 밥을 먹고 할 게 없었다. PX가 약 1시간 동안 열린다는 소리를 듣고 할 일도 없어서 PX를 갔다. 12시 50분쯤 도착했는데 벌써 엄청난 줄이... 혼자 핸드폰을 하며 약 45분간 기다린 뒤 입장할 수 있었다. PX가 2시까지 밖에 열리지 않아 나 다음 10명 정도에서 끊겼으며 한 40명 정도는 들어가지 못했다. 막상 PX에 들어가니 살 게 없었다. 그러다 유일하게 외출할 때 바르는 게 선크림이라 선크림을 종류별로 샀다. 포카리 스웨트 한 캔과 육군 티 1개 집에서 입을 반바지 1개를 구입하였다.
오후 교육- 약 40분 정도 안보교육 영상을 시청하였다. 저출산 및 군사인원 감축으로 인해 중요한 것이 '예비군'이라고 거듭 강조를 하는 교육 영상을 봤다. 여성 징병제니 여성 기초 군사 훈련 계획이니 말하는 부분은 단 하나도 없었다. ㅋㅋ 국방 병력이 줄어든다 줄어든다 말로만 떠들면서 인원을 늘릴 생각은 안 하고 그냥 현재 강화가 제일 중요하다고 이 악물고 말하는 것이었다. 예비군이 중요한 건 나도 인정하지만 더 중요한 것들을 욕먹기 싫어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숨기는 일'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후 야산 전투를 하러 갔다. 야산 전투는 오전에 했던 시가지 전투와 거의 비슷했는데 다만 장소가 야산이라는 점만 달랐다. 1 킬 1 데스를 했다. 야산 전투를 끝내고 정말 오랜만에 K2 격발 훈련을 하러 갔다. 5발씩 쏠 수 있었는데 총을 쏘기 전 두근두근 댔다. 견착을 하고 쏘는데도 진동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5발만 쐈는데도 어깨가 아팠다. 쏘고 느낀 점은 전쟁 났을 때 이 총으로는 적군을 절대 못 죽일 것 같았다. 반동이 너무 세고 총도 무겁고 휴대도 힘들고,,, 돈 아껴서 M4 같은 총기 보급을 하고 그것으로 예비군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서 싸우는 게, 안보교육 때 말한 국방력 증가 방법보다 훨 이득일 것 같다... 아빠나 할아버지 말로는 K2도 엄청 좋은 총이라고 했지만 내가 느끼기엔 K2로 사람을 죽이기는 정말 힘들 것 같았다. 진짜... 그냥 군인들은 고기방패 또는 머리 위에 총을 들고 보지도 않고 쏠 것 같다. 이후 VR 전투를 했는데 이건 그냥 스크린에다가 전자총을 쏘는 게임과 같았다.
퇴소- 먼저 끝난 조는 조기 퇴소가 가능했다. 우리 조는 후반 순위여서 4시 30분쯤 퇴소했다. 학교 셔틀을 타고 학교에 도착하였다. 오면서 꿀잠 자면서 왔다. ㅋㅋ 집에 오자마자 가장 좋아하는 치킨인 지코바를 흡수했다.
느낀 점- 처음이었어서 그런지 꽤 재밌고 유익했다. 군복도 깔끔하게 잘 챙겨 입고 가서 훈련을 받으니 더더욱 실감 났다. 부대 내 조교들도 엄청 친절하고 또 계급 높은 사람 할 것 없이 잘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1년에 한 번 귀찮은 날이지만 한 번쯤은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에 대한 보상을 더욱 잘해준다면 아쉬움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느낀 아쉬움은 교통편이 너무 불편함, 학교 수업을 듣지 못함, 처참한 보수 3가지로 추려볼 수 있다. 교통편은 뭐 차가 있거나 학교에 가면 되긴 하지만, 수업은 정말 아쉬웠다. 수업을 올려주신 교수님 한 분이 계셨지만 안 올려주신 분도 있었다.(알아서 하라는 식,,,) 최근 서울 모 대학에서 예비군 결석으로 인해 학년 장학금 불이익을 준 사건이 있었다. ㅋㅋㅋㅋㅋ 진짜 어이가 없다. 예비군은 결석이 아니고 또 빠지고 싶어서 빠진 게 아니지 않은가? 예비군 훈련이든 군대는 누가 칼 들고 협박한 일이 맞다. 제발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다... 참... 보수 또한 최저 시급이라도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고쳐야 할 문제는 많지만 차차 나아지길 바라며 예비군 훈련 후기 글을 마친다.
+아 추가적으로 꿀팁을 하나 주면 점심시작은 1시라고 하지만 먼저 줄을 서야 빨리 받을 수 있다. 핸드폰 배터리 100% 충전을 해가라... 또 보조배터리도 가져가면 더더욱 좋다. 시간이 넘쳐난다. 책을 가져갈 걸 그랬다 ㅋㅋ. 모든 예비군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