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친구와의 만남
엊그제 C라는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꽤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사이다. C를 만난 건 군대여서였다. C는 나의 맞선임이었는데 전역을 하고 나서도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만나왔고 종종 연락도 해왔다. 그렇게 그와 시간을 보내온 지금, 나는 그가 나의 꽤 친한 '친구'라고 생각한다.
의도적이건 비의도적이건 나는 친한 친구가 많이 없다. 여기선 '친한'이라는 의미와 '친구'라는 의미를 잘 설명해야 하는데 글이 길어질까 봐 이에 대한 말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C는 손 하나로도 꼽을 수 있는 나의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평소 우리는 중간고사 혹은 기말고사가 끝나고 여유가 있을 때 만나왔지만 이번엔 특별하게도 학기 진행 도중 만남을 가졌다.
이유는 친구 C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존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도 나를 많이 좋아하고 있어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던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저번주부터 과제가 정말 많고 학회 활동 등 내 여유 시간도 많이 없어서 바빴지만 그래도 애정했던 친구라 흔쾌히 오라고 하였다. 그 친구는 경기도 쪽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금요일 수업이 끝난 뒤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C는 방황을 하고 있었다. C는 작년 12월부터 학교 학부생 인턴으로 연구실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개강하기 전에도 한번 그의 집에 놀러 가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나름 잘 맞는 학부생 인턴 생활이라고 하였다. 그러다 그는 정말 '갑작스럽게'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고 있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유를 묻자, 생활이 꽤 재밌기도 한데 랩에 있는 어떤 박사생 형이 너무 멋있어서 대학원 진학을 해 자기도 박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평소 나의 스토리를 읽어보신 분들이나 나의 가치관을 알고 계신 분들이라면 내가 어떤 말을 그에게 했을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일단 그의 말을 차분히 듣고 공감을 해준 뒤 그가 내 의견을 물어보자 나는 이렇게 답했다. "다 좋은데, 누군가의 겉모습 혹은 외적인 화려함만 보고 그 일이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라고 말이다. "본인이 진정으로 하고 싶어서 그 일을 해야지, 누군가를 보고 그 일을 하는 건 초기에 동기를 부여해 줄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잘 이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처음 불탔던 사랑도 점점 그때와 같지 않아 지고, 처음 불탔던 의지도 점점 희미해지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누구나 다 그렇다. 마치 연초에는 엄청난 계획을 세우지만 결국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나는 네가 그러한 이유로 지금 하는 일을 해 나가는 것에 대해 이해는 하고 응원은 하지만 과연 그게 진짜 네가 원하는 일인지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라는 말을 해줬다.

그러고 난 뒤 열심히 잘 생활하고 있길래 한편으론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된 3월부터 일에 대한 흥미가 떨어지고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 하는 건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으며 더 나아가 별로 원했던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는 진로 및 이러한 고민들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꼭 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큰 힘과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 줄 능력도 없는 사람이기도 하며, 세상엔 정답이 없는데 나에게 어떤 길을 물어보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까지 겪어온 일들을 통해 얻은 감정들을 공유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는 "처음엔 자기도 그 일이 멋있고 내게 잘 맞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실습도 하고 두 달 동안 매일매일 실험실에 6시간씩 출근을 하고 연구를 해 본 결과, 별로 자기가 원하던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라고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물론 초기에 그러한 활동과 경험을 한 뒤 그 일이 맞지 않음을 알았던 점은 정말 중요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겠는가?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일인지는 단지 '해보는 것'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진지하고 숱한 고민과 생각을 통해 나온 본인의 진심만이 오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에게 '잠깐의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여유라는 것의 예로 다음 학기 휴학을 해보라고 권장해 주었다. 단, 이 휴학 기간을 온라인상으로 혹은 핸드폰 상으로 보내는 것이 아닌 오프라인 경험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뭐 국토대장정, 문화 역사 탐방, 여행, 동아리 활동 등으로 말이다. 온라인도 좋지만 아직까지 '사피엔스'는 이 온라인으로부터 완벽 적응한 존재가 아니기에 다른 아이디어나 영감들은 오감을 사용하는 오프라인 체험에서 더 많이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온라인은 아직까지 시각, 청각밖에 활용하지 못하지만 오프라인에선 시각, 후각, 청각, 미각 등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잠깐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그 어른들 누구도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C는 이과고 또 고등학교 내내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을 그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여기서 다 해주지는 않겠지만 그는 정말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아왔으며 그러한 사회 분위기로부터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어른들이 말한 (종착지라고 속았던) 대학에 왔을 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다시 '스펙'이라는 이름으로 기계와 같은 삶을 살아야 했고 고등학교 땐 내신만 잘 받으면 끝이라고 했지만 이젠 '학점'이라는 판단 지표를 또다시 '은근슬쩍' 넣어버렸다. 사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세뇌를 당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
땅 덩어리도 좁은 나라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다 보니 쉬어갈 틈조차 주지 않았고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 혹은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선 누구를 '이겨야 만' 가능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내면을 바라보기보다는 세상의 속도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살아갈 때가 많다. 하지만 남는 게 무엇일까? 곧 흙으로 돌아가는 보잘것없는 인간의 삶인데 그 누구도 인간의 본질을 생각할 시간을 그리고 내면을 돌아볼 시간적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본인이 의도적으로 그런 시간을 가져야만 가능하다. 운이 좋겠도 나는 그러한 시기를 재수를 하며 또 삼반수를 하며 가질 수 있었다. 인간의 내면과 의식은 정말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인데 이러한 말을 해준 어른들은 정말 많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한 시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알기에, 나는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도와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늘 추천하는 방법이 이것이다. 빨리 간다고 좋은 게 아니다. 예를 들어, 빨리 가서 10억 늦게 가면 100억을 준다 하면 당신은 빨리 갈 텐가? 그럼 왜 빨리 가려하는 것인가? 이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빨리 간다고 누가 당신의 삶을 보장해 주는가? 나는 본인의 내면을 돌아볼 충분할 시간을 갖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디지털로부터 해방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여건이다. 성난 사람들 드라마에서 나온 말처럼 '지금 세대는 PC, 온라인, 스마트폰이라는 문명으로부터 테스트를 당하고 있는 실험용 쥐일 뿐에 불과하다. 우리는 첫 스마트폰 세대라며 자축하고 있지만 1000년 뒤 역사에선 첫 디지털 실험을 당한 세대라고 기록될지 누가 알 것인가?
나는 그와 이런 말을 나누면서 요즘 사람들 혹은 또래들 중에서도 C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나는 재수 및 삼반수를 하면서 정말 많이 느껴왔기에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도 그냥 흘러가는 대로, 세상은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냥 그대로 있을 뿐이다. 당신의 시선이, 시야가 그리고 가치관이 어떤 태도와 생각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따라 세상은 각자 달리 보일 뿐이다. 세상은 본인이 믿는 대로 보인다.

그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감사함을 전해주었다. 나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가 정말 큰 도움이 됐다길래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C나 나나 앞으로 계속해서 방황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자아는 잃지 않을 것임을 자신 있게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