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한 학과?!?!
저번 학기부터 복수 전공을 계획하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또 몇 안 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들을 들어보았다. 내가 '물리학과'를 복수 전공할 예정이라고 얘기를 했을 때 다들 놀라는 표정이었다. 어이가 없게 들릴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고등학교까지 과학 학원이나 과학 수업을 거의 들어보지 않았던 내가 갑자기 물리학과를 복수 전공한다고 하니,,, 이과 쪽 친구들도 몇 명 있는데 그들 대부분도 '물리'는 기피 과목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현시대의 '물리학과'는 어떠한 열정이 있는 사람 혹은 큰 뜻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이과 생들도 굳이 가려고 하지 않는 학과이다. 이과생들의 시선에서도 물리학과를 포함한 수학과, 화학과, 생명과가 있는 '순수자연대학'은 문과로 치자면 어문계열에 속한 사람들로 취급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늘 그렇듯이 그들이 생각하는 '쓸모'에 집중을 한다면 이는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 요즘 대학은 취업시장의 양성소에 불과하므로 순수 학문 특히 어문계열, 사회계열, 자연과학계열보단 응용 학문을 더 잘 쳐준다. 문과여도 경영학과 혹은 경제학과를 나와야만 현실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암묵적인 시선이 만연하다. 우리 학교만 하더라도 많은 비상경계학생들은 어떻게 서든지 상경계열 복수전공을 하기 위해 학점 따기에 바쁘다. 경영학과 복수전공은 4.5점 만점 중 4.3x 혹은 4.4x점대는 돼야 할 수 있다. 이과 쪽에선 요즘 대세인 컴공 혹은 우리나라에선 늘 안정적이었던 '전화기'(+기계랑 화공 쪽은 점점 떨어지는 추세라고들 한다.), 특히 전기 전자를 복수 전공하기 위해 이과생들 사이에서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뭔가 복수전공이 기본 베이스가 된 느낌이다. 학부생 수준의 공부를 할 뿐이지만 그래도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조금이라도 '특별한 망토'를 입기 위해 치장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심지어는 경영학과가 무슨 과목을 배우는지도 모르고 그냥 상경계를 가야 한다는 대세에 따라 신청하는 사람도 정말 많다. 경영학과와 경제학과를 둘 다 다녀본 입장으로서 지금 만약 경영학과를 다니고 있다면 정말 크게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날이 많았다. 둘은 유사한 측면도 있지만 배우는 건 정말 다르다. 고등학생 때 이런 지식도 없이 나 또한 문과는 상경계열 중 특히 무조건 경영학과를 가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 때문에 처음에 경영학과를 선택했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경영학과는 내가 생각하던 곳이 아니었고 하기 싫은 공부만 꾸역꾸역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지금 다니는 경제학과는 아주 마음에 든다. 상경계열이면서 사회과학계열이기도 한 경제학과에선 내가 원하는 공부를 잘 해나가고 있다. 운이 좋게 상경계열에 있었던 나는 복수전공을 마음먹었을 때 한결 수월했던 건 맞다. 만약 사회계열 또는 어문계열에 다니고 있었다면 나 또한 상경계열 복수전공이 필수라고 생각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여유가 있던 상황이라 다양한 분야에 대해 탐색할 수 있었다.
요즘엔 정말 이름부터 휘황찬란한 학과가 많다. '글로벌', '바이오메디컬', '파이낸스', 'ai'등등의 용어를 갖다 붙인 학과들 천지다. 이런 멋진 이름들에 속아 그 과에 들어간 고등학생들도 정말 많이 있다. 대학들이 '학과 이름팔이'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 옛날에 들은 얘기가 하나 있는데, 어떤 학교에서 원래 있던 과 이름을 '디스플레이' 였던가 비슷한 영어가 섞인 과 이름으로 바꿨더니 그 해 그 학교 입시 결과가 엄청 올라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ㅋㅋ
내가 '물리학과'를 선택한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매력적이었던 건 '근본'을 배우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응용 학문을 배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 응용 학문들의 뿌리에는 '물리'가 필수적이었다. 그 누구도 이 세상을 살면서 궁금했던 지식들에 대해 답을 해준 사람이 적었었는데 '물리'만큼은 아니었다. 이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듯한' 설명은 해준다. "원래 그래", "알 필요 없고 입시 공부나 열심히 해"와 같은 소리 천지인 세상에서 살아왔어서 그런지 '물리'는 차분하고 그리고 강렬하게 나의 궁금증을 해소해 주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때가 있지만 '물리'를 공부했을 때의 느낌보다는 충격이 적었다. 주입식 교육으로 배운 물리가 아닌 나 스스로 찾아가며 배우는 물리가 가진 매력은 엄청났다.
물리의 많은 부분을 수학이 차지하지만 수학만 잘한다고 해서 물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리를 배우면서 수학의 위대함을 정말 많이 깨달았던 것 같다. 수학을 물리에 비교하면 물리 또한 '응용'학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수학을 응용하여 현실을 설명한 것이 '물리'이기에 수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철학과 더불어 말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 중 과학자, 수학자, 철학자, 예술가의 역할을 동시에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근본(?) 학문들부터 지금 시대의 모든 학문들이 탄생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과 들 중 수험생 혹은 대학생들은 선택에 문제에 놓여있다. 본인이 이전에 무슨 목표가 있고 뜻이 있는 사람들은 쉽게 과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 체제상 이러한 방법을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기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인이 무엇에 관심이 있고 그 학과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배우는 것인지 찾아본 후 과를 선택하기보단, 선생님들의 추천 혹은 주변인들의 추천, 입결이 높은 학과, 이름이 멋진 학과들에 끌릴 수밖에 없다. 대학 입시 원서를 쓰기 전에 그 과에서 배우는 전공 커리큘럼 혹은 전공 필수 책을 하나라도 구매해서 훑어본 학생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런 과정을 통해 대학에 온 학생들 중 적응을 잘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꽤 많다. 힘들어도 꾸역꾸역 해나가는 학생들도 정말 많다. 얼마나 슬프고 비참한 현실인지 모르겠다.
이런 사회에서 공부를 하니 대학이 취업을 향한 공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본인의 진정한 내실보단 '학벌'과 '학위'라는 껍질만 쌓아갈 뿐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절대 절대 절대 아니다. 그래서 오만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본인들이 다니고 있는 혹은 나온 학과가 취업, 미래 전망을 떠나 내가 진정으로 '공부하고 싶은 학문'이었냐에 대한 질문에 솔직하게 '맞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딱히 할 게 없어서 혹은 순위가 높거나 취업이 잘되니까 등의 이유가 대다수일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에 새롭게 태어난 사람이 아무 지식이나 정보들 없이 갑자기 '바이오', '시스템' 혹은 '신소재' 혹은 '메디컬' 관련 과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 확률은 0에 가깝다. 어떠한 계기가 있을 것인데 그 계기가 본인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아니면 사회의 요구 혹은 사회의 지위나 시선에서 나온 것인지 '솔직하게'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은 본인 자신들 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학과들의 혼란 속에서 대학에서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과가(의치한은 제외하고) 문과에선 솔직하게 없다. 본인들이 경제, 회계, 심리, 사회복지 관련해서 책을 읽거나 대학 학과 커리큘럼과 전공책을 훑어본 다음에 찾아보는 것이 최선일뿐이다... 이과에선 그나마 꼽으라면 '수학과', '물리학과', 화학과'등이 있을 것 같다. 이과 학과들의 전공 과정을 보니 대부분 물리나 수학은 100% 필수이고 일반 화학 정도가 그다음이다. 정 하고 싶은 게 없는 학생들은 순수과학계열에 들어가 공부를 한 뒤 복수전공으로 다른 과를 수학하는 것도 좋은 선택인 것 같다. 만약 취업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선 '컴퓨터공학'보단 '물리학과+전기전자학과'가 취업 깡패인 것 같다.
'물리학과'와 같은 학과가 가진 장점을 하나 더 말하고 글을 마치고자 한다. '물리학과'의 장점은 어디든 써먹을 수도 있다는 것에 있다. 물론 '에너지 관련', '반도체 학과', '바이오 학과', '전기전자 관련'에 비해 응용력은 한참 밑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그것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물리학과만큼 특화된 '응용력'을 가진 과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대세가 과연 몇 년 뒤에도 대세일까? 심지어 지금처럼 급변하는 시대엔 더더욱 말이다. 어제의 첨단은 오늘의 구식이 되는 사회에서 어떤 것을 100% 확신하고 믿을 수 있을까? 지금 ai가 유망 다고 지금 전기전자가 유망하다고 지금 뇌과학이 유망하다고 지금 금융이 유망하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에도 과연 지금과 같은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다. 무언가를 바라고 하는 순간 그 현실이 '운이 좋지 않게' 오지 않는다면 그때 가선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이런 처지에 놓인 우리들은 본인이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가 본인 스스로에게서 나오는 것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내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말이다. 8~90년대만 하더라도 '물리학과'가 이과 학과 들 중에 1등이었다. 심지어 '의예과'보다 말이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물리학과는 최하위 인기과가 되었다. 물론 그 당시에 열심히 한 사람들은 어떤 분야에서든지 잘해나갔을 것이다. 이건 다른 문제이다. 지금의 선택이 미래를 기대하고 혹은 지금 유망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도박장에서 '룰렛'을 돌린 것과 다름 없다. 90년대 사람들은 물리학과가 유망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역사는 반복될 것이다. 지금의 컴공도 마찬가지로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이후로 컴공 또한 비인기과였지만 요즘엔 인기 1등이자 공급과잉이다. 이런 추세가 10년 뒤에도 똑같을까?
여기서 놀라운 건 본인만 그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과가 유망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순간 수많은 사람들 또한 유망하다고 생각해 그곳에 들어갈 것이다. 다시 또 피 터지는 경쟁 싸움이다. 역사는 반복되고 자연은 간단하다. 지금의 모든 것은 이미 일어난 일들의 반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리학과'가 다시 1등이 되는 날을 바라지만(ㅋㅋ 사실 바라지도 않고 가능성도 거의 없다)그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지금 진심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합리화라 할 수도 없는 게 나도 맨 처음엔 ai나 컴퓨터 관련 학과나 전기전자 학과 복수전공을 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이 복수전공을 노리는 문과 친구들 중에서도 학점도 나름 괜찮아서 수월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게 그런 것들이 아님을 다시 깨달았고 숱한 고민 끝에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미래의 유망 학과 또는 산업을 본인이 안다고 생각한다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 그냥 그곳에 레버리지를 끌어다 투자를 하면 되기 때문이다. 손쉽게 돈을 벌고 먹고 놀고 할 수 있을 텐데 본인이 굳이 공부할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그 이유가 이것이길 바란다.
'그냥,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