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상자

돈 과 순간

LePetitPrinceHong 2023. 10. 29. 16:17

 우리는 늘 어떤 고민을 하면서 살아가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며 살아가는데 익숙해져 있다. 그 이유가 무엇 일지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는데 '고민'은 인간의 심리적 본능 또는 상태와도 관련되어 있지만 장기적인 계획 수립은 사회적으로 '교육받은' 결과다. 초등학생 혹은 그 이전부터 우리는 꿈을 강요받는다. 누가 되고 싶니? 꿈은 뭐니? 등등의 질문을 받고 우리는 그에 대한 답으로 그 당시 정말 본인이 '되고 싶은' 혹은 어른들로부터 추천받은 꿈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어렸을 때 말했던 꿈들은 몇 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고 성인이 되면 다른 꿈들로 바뀌기 마련이다. 물론 동일한 꿈을 쭉 밀고 나가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여기서 말한 '꿈'이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을 이야기한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에선 '저는 세상 이것저것을 탐험하며 살아가는 것이 제 꿈이에요'라는 말보단 '검사요' 혹은 '의사가 제 꿈이에요'라는 말이 더 잘 팔린다. 어린 왕자에 나온 내용을 빗대 표현하자면 어른들에겐 '이 집은 어두운 분위기를 주지만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안락함과 편안함이 있어요.'라는 말보단 '이 집은 12억 짜리에요'라는 말이 더 잘 팔린다.

 이러한 꿈들은 '현실'이라는 벽을 마주하며 점점 바뀌어나간다. '현실'이라는 힘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과정일 수도 있다. 나는 근래 나에 대한 성찰도 많이 해가면서 이 '현실'이란 요소 즉, '환경'으로도 대변될 수 있는 요소가 한 개인의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던 것 같다. 나의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라면 알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깨닫다'는 단순히 '나도 생각해 봤어' 또는 '그런 생각은 나도 했지'과 같은 수준의 생각과 깨달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한 달 이상 그 생각을 본인삶에 붙잡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꾸준히 탐색하고 세상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결과, 이전 글에서도 몇 번 말했지만 '경제'적인 요소는 세상에 내던져진 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느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돈'은 중요하지 않지만 잘못하면 그 말은 '오만함'을 보여주는 말이 될 수 있다.

 나도 '돈'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내 뒷 배경에는 돈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는 몇 십억 혹은 몇 백억 대 자산을 갖고 있는 가정에서 자랐진 않았지만 정말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자라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경제적인' 큰 부담 없이 살아온 하나의 객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려움이 덜하다. 현재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힘든 가정 혹은 그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돈이 중요하지 않다"라고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절대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돈이 어느 정도 있어야 말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말이다. 마치 대학교를 나온 사람만이 "대학은 중요하지 않다"라고 이야기해야 세상사람들이 받아주지 대학도 안 나온 사람이 저런 말을 하면 무시받고 몰매 맞는 상황과 유사하다. (아 요즘은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대학에 굳이 나오지 않더라도 삶을 잘 영위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볼 기회가 많아 보기가 좋다.)

 위와 같은 생각 말고도 '경제적인 여유'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해 본 결과, 말을 정말 조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 중요하지 않다는 나의 말은 무언가 어른스러움 혹은 성숙함을 보여줄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뒤엔 '기만'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를 제삼자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너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어서 그런 생각과 생활 태도를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그래'라고 비판받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러한 비판은 너무나도 정당하고 정확한 비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은 본인이 바라보는 세상에 갇혀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본인이 그곳에서 나오려고 노력하지 않는 한... 본인이 의도적으로 나와 직접 그 세계를 경험해 본다면 그 생각들은 모조리 바뀔 가능성이 정말 매우 높을 것이다. 즉 여기서 젤 중요한 건 '위선자'가 될 수 있는 행동을 하지 않고 또 그처럼 되지 않는 것이다.

 만약 경제적 현실 요건이 어느 정도 해결됐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나는 '순간'을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거창한 계획과 목표보단 '순간'만 살아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겁쟁이? 혹은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런 의견은 상관없다. 위에서 말한 꿈의 변화처럼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은 변화해 나간다. 전쟁, 천재지변 등과 외부환경은 내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내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sns를 하지 않는 이유도 그것이다. 여러 자극적인 소재들 또는 내용들 연예인 관련 내용, 맛집 내용, 인생 꿀팁 등등 수많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에겐 이러한 정보는 필요가 없다. 요즘 세상엔 굳이 안 들어도 될 이야기들 또는 핫한 이야기들을 무의식적으로(핸드폰을 하는 것이 의식적인 행동이라 가정하면 의식적으로) 접하게 된다. 굳이 몰랐어도 잘 살아갈 수 있었는데 그와 관련된 내용이 나의 뇌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외부환경' 요소가 너무나도 싫어 sns를 하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삶 또한 별로 궁금하지 않다. 그러고 나서 나는 더욱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다.

 약 2019년 하반기부터 4년 동안 이러한 '외부환경' 변수를 줄이기 위해 늘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며 살아가려 하고 있다. 이전엔 무슨 일을 하더라도 또 계획하더라도 나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별게 아니었던 일들이 많았으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통제할 수 없다'에 대한 생각을 처음 해보게 된 때는 2017년 고3 때였다. 그 당시 내가 자주 듣던 수능 영어 강사 이명학 선생님이 수능 전 응원 영상에서 해 준 말이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때 이 이야기는 내가 재수를 하면서 큰 힘이 되어주었고 또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난 2019년, 21살 때부터 지금까지 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물론, 군대 문젠 제외다ㅋㅋ. 그러나 군대 생활은 나름 즐거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을 하려고 하다 보니 sns는 자연스럽게 내 삶에서 멀어졌다. 내가 엄청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sns도 해서 내 글만 틱 올리고 연락을 받았었을 수도 있는데 인스타와 같은 어플에 들어간 순간 그럴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무의식적으로 클릭이나 스크롤을 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나는 외부환경 변수를 최대한 줄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삶 속에서도 고민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은 들기 마련이다. 나는 이러한 고민들 혹은 계획들 조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생각을 계속해보았다. 나는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뿐더러 많은 일들이 내 예상과 빗나갔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에 대한 생각을 정말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거창한 미래 계획을 좋아하지만 본인들도 알 것이다.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일, 즉 지금을 연속해서 나눈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순간'만 살아가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이다. 그 행동에 대한 결과가 나를 어디로 이끌어줄지는 모르지만 '순간'을 살아갔다는 인상만은 내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그 순간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노래면 노래, tv 시청이면 tv, 게임이면 게임, 공부면 공부. 무얼 하든 간에 그 당시 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보인다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는다. 무계획이 계획이다. 백날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해봤자 결국 '지금 이 순간'을 살지 않으면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모든 일에 대한 '후회'는 이 '순간'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 때문일 것이다. 만약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면 그에 따른 결과는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흔히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선 운명에 관해선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러한 '순간'에 대한 집중은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공부를 하고 싶으면 열심히 그 순간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놀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마음 편치 않게 놀 바엔 놀지 않는 것이 났다. 완벽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마치 경제학에서 배우는 '합리적 기대 가설'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합리적 기대가설(준강형)이란 내가 지금 현재 얻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활용해 '합리적'으로 행동을 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그 정보들을 이용해 판단하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가설을 주식시장에 적용한 것이 '효율적 시장가설'이다. 이러한 방식을 주식 시장에 적용해 주식의 현재 주가엔 이미 지금 이 순간까지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가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 효율적 시장가설의 의미이다. 하지만 누군가 주식시장이 급격한 변동을 보이거나 폭락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효율적 시장가설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보고 잘못 예견했다며 비판할 수 도 있다. 그러나 여기엔 한 가지 오류가 있다. 효율적 시장가설 즉, 합리적 기대가설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 또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냥 그 당시에, 현재에, 순간에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최선을 다해 활용해 예측을 한다는 것이지 결과와 예측이 정확하게 맞을 것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예측을 할 땐 순간에 집중을 하 듯, 모든 정보를 올바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사용하여 분석하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현상을 예측 불가다. 본인 생각대로 결과가 나왔다면 그건 운이 좋았던 것이며 잘못 생각했다간 확증편향을 유발할 수 있다. 또 본인이 생각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건 운이 약간 좋지 않았어서 그런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며칠 뒤 혹은 몇 달 뒤 혹은 몇 년 뒤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 최근 시험이 끝나고 친할머니 댁에 갑작스럽게 방문을 한 날이 있었다. 이 또한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 한 행동이었다. 또 저번 학기 받았던 성적 장학금으로 가족들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이 또한 할 수 있을 때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라는 마음에서 나온 일이었다. 가족들에게는 더더욱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