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주체성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서울에 살고 있다. 2019년엔 혼자 자취를 했고 2020 코로나를 겪고 전역을 한 뒤 2023년부터 다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올해는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다. 서울에서 산 기간을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서울에서의 삶은 꽤 길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여러 환경적인 부분의 지원 덕분에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시절, 막연한 서울 동경(?)이 있었다. 나름 지역에서 공부를 괜찮게 한다는 고등학교에 다녔어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당연'하게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가야'된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도 흔히 '인서울' 대학교만 이야기만 했지 지방에 있는 대학교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나도 그땐 전혀 몰랐었다. '아직 성인이 아니었어서 그랬었나?' 싶기도 했지만 너무 어려도 너무 어렸고 너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론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요즘 대학'이 주는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학 다니는 게 나쁘지 않아서'라고 밖에 설명하지 못하겠다. 디지털 사회 속엔 '요즘 대학'보다 퀄리티 높은 강의와 정보들이 널려있다. 사실 이러한 점에서 대학은 디지털을 '정보의 질 및 양' 측면에서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대학은 올바른 정보를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 혹은 어떠한 일을 학생들이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역할을 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은 아직도 구시대적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 암기식 시험이 만연해있고 교수님의 방식에 학생들을 끼워 맞춰야 한다. 이러한 내 말에 대해선 두 가지 측면에서의 반박을 받을 수 있다. 첫째, 그런 게 싫으면 다니질 마라. 둘째, 암기식 시험과 같은 거라도 진행해야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한다.
첫 번째 주장에 대해선 나도 적극 동의한다. 그렇다. 사실 이런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내가 안 다니면 된다. 하지만 두 번째는 각 개인을 넘어 우리나라 자체를 파멸로 이끌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시키는 것만 하며 살아가는 것이고 또 강제력 속에서 무언가를 해내는 습관을 들인다면 이는 분명 '주체성 결여 및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여자친구와 카페에 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쪽 테이블에서 어느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하는 이야기가 내 귀에 들렸다. 들린 이유는 목소리가 크셨기도 했지만 '군대'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반응을 했다. 아저씨는 아주머니에게 '군대 휴대폰 사용'에 대해 자신은 별로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맨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저 아저씨도 똑같은 옛날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의 나는 '판단을 줄이려고' 정말 노력을 하고 있는데 나에겐 군대 문제는 아직도 화가 나며 예민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저씨의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그 얕은 생각 때문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말씀하시길 예전 군대에서 핸드폰이 없었을 땐 자식들이 동기나 선임 및 후임들과 '알아서 본인들의 판단'대로 일을 하는 '능력'을 배웠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옳고 또 내가 해야 하는 행동에 대한 책임감과 판단력을 갖고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무언가 일이 발생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가족 혹은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의 의견과 평가를 통해 일을 처리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아저씨의 말에 적극 동감했다. 휴대폰 사용으로 인해 얻은 장점들도 꽤 있다. 가혹행위 감소, 인권 보장 등등 말이다. 나는 여기서 휴대폰 지급에 찬성 또는 반대의 표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이에 대해선 찬성이긴 하다) 주체성 혹은 책임감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계속 누군가 결정해 주는 쳇바퀴 속에서 살던 쥐들은 쳇바퀴를 벗어나야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알지 모른다. 어쩌면 알고도 '두려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 자신의 일을 대신해 해결해 주길 바라며,,, 흔히 사회가 정해놓은 성인, 즉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이후에는 본인들이 의도적으로라도 벗어나려고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그러한 능력을 길러주지 않을뿐더러 그러한 '이탈' 행위를 보이면 욕을 하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매도한다. '능력이 없어서 도태된 거야' 혹은 '괜히 부러워서 그러는 거야' 등의 생각들로 사람들을 갈라 친다. 본인들이 '우물 속에 갇힌 개구리'라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우물 안에 서 벗어났지만 바로 옆에 다른 우물이 있을 수도. 하지만 이땐 모두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이기 때문에 둘 다 처지는 '똑같다'. 누가 누굴 뭐라 할 처지가 아니다. 나는 다만 우리가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화가 만연하고 이러한 것들에 대한 교육과 지침이 없는 나라에서 살기 싫다. 맞다. 나는 언젠가 한국을 뜰 것이다. 사실 친구도 많이 없어 한국에 대한 아쉬움이 전혀 없지만 사랑하는 가족들이 유일한 고민거리이다. 마음 같아선 1000억 부자가 돼 할아버지, 할머니를 포함해 모든 가족들과 해외에 나가 살고 싶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 사실 이것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한국에서 살고 싶으실 수도 있고 우리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나와 또래인데 동생도 한국에 살고 싶어 하기에 이는 나의 '헛된 희망' 정도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꼭 떠날 것이다. 다른 나라가 천국이라 떠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한국이 지옥이라 떠나고 싶은 것이다.
오늘 다른 이야기를 쓰려했는데 서론이 너무 길어졌다. 이러한 한국에 있는 가장 큰 중심지에 살면서 또 대학을 다니면서 느낀 답답함은 위와 같은 것들이었다. 위에 쓴 것보다는 훨씬 많긴 하다... 하지만 이러한 삶 속에서도 힐링이 되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참 다행인 것 같다. 바로 그 누구나 다 아는 '한강'이다.
'한강'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거슬림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탁 트인 한강에서 서울 도시를 바라보면 전부가 다 작아진다. 서울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고층 건물들 천지이다. 그래서 그러한 건물들 사이를 다닐 때마다 답답함을 자주 느낀다. 시야가 닫히고 주변에 조심해야 할 요소들이 널려있다. 건물 사이도 매우 촘촘해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늘 건물이 같이 보인다. 이러한 답답함을 한강은 해결해 준다. 한강 벤치나 마당에 앉아 하늘을 보면 정말 하늘만 보인다. 또 한강 건너에 있는 건물들은 아주 작은 개미들처럼 보인다. 물론 내가 앉은 반대쪽 뒤엔 건물들이 크게 보이지만 그것마저 없길 바라는 건 내 욕심기에... 한강을 바라보며 멍을 때리는 순간이 내가 살아있구나 를 인식할 수 있게 해 주는 순간이다. 바쁘게 학교엘 왔다 갔다 하며 지낼 땐 전혀 들지 않았던 생각들이 많이 생겨난다.
서울은 인구 밀도도 정말 높고 건물, 아파트가 잡초처럼 널려있다. 나는 이런 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 사람 대부분이 다 그렇지'라고 말할 수 없는 점이 나는 가끔 구역질이 날 때도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살면서 이 정도의 역함을 느껴본 사람만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서울 도심의 자동차 소리, 경적 소리를 들으며 목적지를 향해서만 걸어갈 땐 늘 거대 건물이 내 옆을 따라다닌다. 내가 볼 수 있는 공간은 오직 앞 뒤뿐 옆엔 건물들 뿐이고 그마저 하늘에도 건물들이 보인다. 서울에서 이곳저곳 다니며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보다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순간 알게 됐다. 나는 맛집, 즐길거리, 놀거리가 없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강과 산 바다와 같은 탁 트인 공간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크게 발달되지 않는 지방 도시들은 아직도 그런 곳이 많을 것이다. 그런 곳에 가서 살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점점 망해가는 나라에 굳이 싶기도 해서 영주권이나 이민자를 받아주는 나라들을 탐색 중이다. 이 망해가는 이유로 처음엔 어른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내 나이 세대가 심하면 더 심해지지 약화되지는 않을 것 같기에 우리 세대 때문에 망할 것이다.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저번에도 말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은 나지 않지만 내가 한국에서 살게 될 경우는 딱 2가지이다. 첫 번째는 이민자를 받아 국민의 3~40%가 외국인이 되는 것이다. 혼란은 있겠지만 나는 그런 혼란을 즐긴다. 우리나라의 그 '종특' 문화가 빨리 사라졌으면 좋겠고 외국인들로 아니 미래엔 'NEW 한국인'들이 그러한 문화를 희석시켜 주면 좋겠다. 두 번째로는 통일이다. 뭐 통일이 되면 또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혼란 속에 내 또래 친구들 혹은 이 한국에 찌든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때 가서 분명 본인이 우물 안의 개구리라는 점을 알아차릴 것이고 그 상황에선 또 안간힘을 쓰며 사회 혼란을 부정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상대성'을 존중해 주는 나라이길 바란다. 이전에도 쓴 '삶의 진리'라는 글이 있는데 내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죽음'과 '상대성'이다. 겉만 번지르르 이해해 주는 척 뒤에선 비웃는 그런 상대성이 아닌 진심을 다해 온 맘으로 상대성을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목수공 일을 해도 사명감을 갖고 하고 또 사회는 이 일을 중요한 일이라 여겨야 하고 이는 미용사, 경찰들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서로를 존중해 주고 각자의 직업 혹은 역할을 이해해 주어야 한다. 각 직업, 역할에 속한 사람들도 본인이 사회의 필수적인 구성원이라는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해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저 국회의원,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 혹은 고수익 대기업만 떠받들어주는 나라는 언젠가 분명 확실하게 망할 것이다. 그때 가서 후회해 봤자 소용없다. 지금의 저출산 사회, 갈등이 만연한 사회, 살인 혹은 범죄가 점점 늘어나는 현상은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것이 절대 아니다.
+다음 주부터 시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