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후기] 콘크리트 유토피아
7월 말부터 8월 말 개강 전까지 규칙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직장인처럼 말이다. 새벽에 일어나 직장인들이 타는 출근길 지하철에 합세하여 저녁 7시쯤 퇴근길 지하철을 타고 집엘 돌아온다. 아, 집에 들어오기 전 약 한 시간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온다. 월, 화, 수, 목, 금, 토(오전) 까지는 매일 반복이고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밤까지는 여유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여자친구와 최근 개봉한 '콘크리트 유토피아'라는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개봉하기 약 한 달 전쯤인가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를 외치는 이병헌 배우님의 예고편을 봤었다. 재밌는 소재로 만든 영화 같아서 꼭 보고 싶었다. 정말 재밌게 본 것 같다. 여기서 재밌다는 것의 의미는 나에게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준 영화였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영화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예고편을 대충 본 것도 있지만 솔직히 "아파트는 주민의 것"이라는 구호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봤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다.
지금부턴 어느 정도의 스포일러와 뇌피셜로 적은 나의 이야기들을 써 내려갈 것이기에 영화를 볼 예정인 분들은 도망가셔도 된다! 나의 글을 먼저 읽지 않고 영화를 보신 다음에 각자의 생각과 비교를 해봤으면 좋겠다. 영화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고 모든 사건을 써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았다고 느낀 부분과 캐릭터들의 특징을 설명해 볼 예정이다. 내 생각을 의식의 흐름기법대로!
짧게 줄거리를 소개해보자면 어느 날, 세상에 지진이 일어나 주변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쑥대밭이 된다. 그러나 단 한 채의 아파트만 굳건하게 버텼다.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주민들과 다른 사람들 간의 갈등, 주민들 간의 불화 등 여러 사건이 일어난다. 위기 상황 속에서 보이는 인간들의 추악함, 이기심, 본능 등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1. 인간들의 이기심
이 영화엔 인간들의 이기심이 가장 주된 소재이다. 살아남은 아파트의 주민들은 외부인들을 '벌레' 취급하며 내쫓는다. 이병헌은 영화 속에서 '아파트 주민대표'를 맡게 되는데 외부인들을 내쫓고 '방역을 마쳤다'고 말한다. 대재앙이 닥친 상황 속에서도 인간들은 '우리 편'이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타인'은 배척한다. 그 사람들도 사실은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오히려 대재앙 이전 시기엔 주변 외부인들한테 무시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주변엔 더 좋은 아파트들이 많았고 좋은 아파트 주민들은 '살아남은 아파트' 주민들이 자신들의 단지에 발도 못 붙이게 한 사람들이었다. 이젠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한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선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린 동물들과는 다르다"라고 해서는 안된다. 우리도 똑같고 거기서 거기다. 긴급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은 이성적 선택이 어려워질 것이고 그들 또한 생존 '본능'대로 행동할 것이기에. 과연 내가 곧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인데 그곳에서 타인을 먼저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이러한 행동에 대해 나는 비판적이지 않다. 하지만 본인은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비판적이다. 우린 언제나 '이기적인 동물'에 불과하다. 이성, 지성 운운해도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면 답은 정해져 있다. 만약 본인 스스로를 돌아보더라도 잘 모르겠다면 그것이야말로 제일 큰 문제일 것이다.
2. 모순적인 이타심
한 남성은 외부인들을 자신의 집에 숨겨준다. 외부인들은 그에게 엄청난 감사를 느낀다. 이전에 내쫓긴 외부인들 중 대부분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었기에 그는 따뜻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외부인들도 나중엔 걸리게 되어 그 사람들을 도와줬던 남성마저 궁지에 몰린다. 나는 이 남성을 보면서 '착하다'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았다. 분명 선한 행동이기는 하다. 하지만 100%는 아니다. 그 남성은 하는 것도 없이 보급품만 받아가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음식들을 외부인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은 더더욱 '콘크리트 유토피아' 속에선 문제가 되는 행동이다. 식량도 많이 없고 주민들도 살아가기 힘들어서 몇몇 남자들이 목숨을 걸고 식량을 바깥에서 구해오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어사는 사람이 그곳의 '룰'을 깨고 기생하며 살아간다. 몸에 이상이 있다고 하며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이 베푸는 선의가 과연 100% 선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 사람은 분명 자신이 속한 단체에 피해를 준 사람이다. 그 스스로는 그러한 단체 사람들의 이기심을 욕하지만 제삼자의 입장에서 봤을 땐 본인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우리에게 큰 메시지를 준다고 생각했다. 흔히 '내로남불'적인 사람들을 일컫는다. 어떤 차량이 신호를 안 지켜서 사고가 난 것에 대해선 욕하면 본인이 급할 땐 신호등이 있는 짧은 횡단보도를 무단횡단 한다. 음주운전 차량은 욕하면서 본인은 담배꽁초를 밖에 버리고 담뱃재도 바닥에 그냥 털어버린다. 내 행동엔 관대하고 타인에 대해선 엄격한 것이다. 우선 본인에게 먼저 엄격해져야한다.
3. 리더의 중요성
이병헌은 사실 그 아파트의 주민이 아니다. 이 내용에 대해선 아래 간단히 소개만 하겠다. 이병헌은 어찌어찌해서 '주민대표'가 되었다. 어리바리해 보였지만 그의 리더십은 인정해 줄 만했다. 그의 리더십 덕분에 아파트는 여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출 수 있게 되었고 다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을 하였다. 그와 같은 리더십이 없었다면 그 아파트도 일찍이 내부적으로 무너졌을 것이다. 누군가 또는 어느 집단을 이끄는 힘은 정말로 배워야 할 점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게 악인일 지라도 그러한 능력은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4. 과연 이병헌은 주민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병헌은 사기를 당했다. 자세하겐 나오지는 않지만 아파트를 사려고 돈을 입금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사기였던 것이다. 그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 이병헌은 그 집에 찾아가 집주인(집주인도 사기에 가담한 것 같다)을 죽였다. 그러고 몇 분 뒤 지진이 나며 대재앙이 시작된 것이다. 서류상으로 이병헌은 주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사기를 당했다. 그가 택시 운전을 하며 모은 돈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사기를 당한 사람이 문제일까 친 사람이 문제일까? 둘 다 문제다. 하지만 100%는 없다. 그렇기에 이병헌 또한 잘못은 있지만 그 집의 소유권을 충분히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기를 당한 사람을 욕할 것인가? 만약 본인이 어떤 사기를 당했다고 쳐보자. 누군가 본인을 손가락질하며 '네 잘못이지'라고 한다면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때에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만이 사기는 온전히 피해자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이병헌 또한 주민이라고 생각한다.
5. 현실적인 캐릭터인 박서준
박서준이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박서준이 제일 불쌍했다 ㅜ. 그는 일찍 부모님을 하늘로 보내고 혼자 살아왔다. 그의 꿈은 안정적인 가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그에게 이런 시련이 닥쳐왔다. 오직 그의 목표는 그의 가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여러 폭력을 행사했고 선하지 못한 행동들을 했다. 하지만 과연 그게 선하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살기위해 발버둥을 친 것이다. 그런 모습을 그의 아내인 박보영은 이해를 잘해주지 못한다. 박서준이 그렇다고 해서 착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사람도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6. 이상적이지만 이상한 박보영
박보영은 이타심이 깊은 캐릭터였다. 그녀는 간호사였어서 그런 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녀는 남편 박서준의 변해가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나중에는 이병헌을 대표에서 몰아낸다. 위기가 한순간에 겹쳤긴 했지만 이병헌이 주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큰 시스템은 잘 굴러가고 있었기에 박보영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박보영만 참았더라면 오히려 더 으쌰으쌰 잘 버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언제나 진실에 편에 있기에 박보영 또한 그렇게 행동한 것 같다. 박보영도 그 아파트에서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끝으로 이 영화의 주된 메시지는 '모호함과 모순성'이었다고 생각한다. 극한의 상황 속에서 어떤 것이 정의고 선인지 구별조차 안 되는 상황 속에 던져진 인간들에게서 나오는 본능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그러한 모순성을 지닌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했다. 결국에 '나는 그러지 않은 사람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철저하게 본인을 성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박보영은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통해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 사람들은 그녀에게 밖에서 돌고 있던 흉흉한 소문처럼 그 아파트 사람들은 사람도 먹느냐는 질문에 "아뇨,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라고 대답한다. 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워딩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