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결과에 대하여(+고시생들 파이팅!!!)
노력은 항상 그에 합당한 결과를 만들어낼까?
이 논제는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누구는 '노력하면 된다'라고 하지만 또 누구는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된다'라고 한다. 어느 것이 과연 정답일까? 정답이 없는 게 정답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노력으로 목표를 달성해 낸 사람들의 오만함일 수 있고 노력을 했지만 안타깝게 목표 달성을 하지 못한 사람들의 핑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노력하면 된다'라고 생각한다. 다만, 전제가 있다. '운도 따라준다면'이다.
'운도 따라준다면 노력하면 된다'
'운'은 정말 중요한 요소다. 지금까지의 나의 모든 상황들이 '운' 덕분일지도 모른다.(정말 이렇게 생각한다) '운'이란 무엇일까? 말로 설명하기엔 끝도 없을 것 같다. 간략하게 말해보자면,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일까. 가정환경, 교육 환경, 주변 친구, 키 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태어나진' 존재이기에 가정환경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태어난 국가, 도시, 집안 문화, 재산 등은 우리들이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다. 누구는 재벌가의 자녀로, 누구는 적당한 수준의 집안, 누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진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과연 본인의 '현재'가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간단한 예시로만 '운'을 설명하였지만, '운'은 정말 우리 어디에나 존재한다. 또, 누구는 이 '운'이 '운명' 이미 결정된 상태라고 보기도 한다. 과학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군대에서 종종 얘기했었던 선임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빅뱅이 시작된 이후로 모든 것은 정해져 있을 수도 있다. 그의 이런 의견은 상당히 일리가 있어 보였다. 폭발과 동시에 모든 것이 정해졌으며, 원자 간의 충돌 또는 상호작용들이 이미 일어나기로 되어있던 것이다. 우리들이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들의 노력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 일들이 원래는 정해져 있던 것이며,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도 이미 일어날 일이었던 것이다. 머피의 법칙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what happens happens
이렇게 말하면 누군간 '너는 그럼 노력하지 말고 운명대로 살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는 게 운명을 따라 살겠다는 것이 아니다. '노력하는 것' 자체도 '운명'일 수 있다. 지금 내가 이러이러한 생각을 해서 글을 쓰고 있는 상황 자체도 이미 정해진 일일 수 있다. 그 누가 알까? 사실 이런 생각을 안 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은 것 같다... 잘못하다간 허무주의로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아! 위에 쓴 이야기는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지 '확신'이 아니므로 가볍게 읽어주길 바란다!
대학에 가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엄청난 노력'을 해서 나는 된 거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노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그 노력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이와 같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회는 분명 점점 비참해질 것이다. '만약 네가 암에 걸렸었다면?'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면?' '집안이 경제적으로 파산을 했다면?' 잘 됐을 땐 자신의 노력을 찾아내려 하고 잘 못 됐을 땐 탓할게 무엇일지 찾아내려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마이클 샌델' 교수님이 쓴 '공정하다는 착각(TRANNY OF MERIT)'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다른 주제의 내용도 나오니 꼭 한 번 읽어보길 추천!) '능력주의의 오만'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잘 된 건 내 노력 덕분이고 너네가 안된 건 너네가 노력을 안 해서야'가 되는 것이다. 나도 한때 이런 생각을 한 번도 안 했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인생은 일차방정식이 아니며 굴곡이 있다. '능력주의'를 믿게 되면 본인의 삶이 힘들어질 때 큰 위기가 찾아올 것이고 이전의 오만했던 자신을 반성하게 될 것이다.
사회 자체가 '운'을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흔히 낙오자(?)가 생긴다면 붙잡아 줄 교육이나 사회 시스템이 필요하고 목표를 달성한(성공이란 말을 최대한 배제했다) 사람들은 '운'의 요소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내가 이렇게 된 것도, 안정적이었던 나의 배경들, 상황들 덕분이라고...
수능 또는 고시는 우리나라에선 1년에 딱 1번만 볼 수 있다. 364일 공부를 하고 그 364일을 단 하루에 투자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이보다 큰 도박은 없다고 생각한다. 364일 백날 열심히 공부하고 모의 성적이 우수해 봤자, 그날 하루 배탈이라도 난다면 그냥 끝인 것이다. 나는 이런 경험을 3번의 수능을 보며 잔인하게 느껴봤다. 특히 '결과주의'가 심한 우리나라에선 그 성적표에 찍힌 숫자만이 남는다. 숱한 노력과정들은 그 숫자 하나에 묻힌다.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모두를 비참하게 만들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너무 가혹한 잣대는 잠시 넣어두자.
+ 오늘은 변리사 1차 시험을 보는 날이다. 주변에 아는 어떤 누님도 예전부터 변리사 시험을 준비했던 것 같다. 결과가 어떻든 간에 지금까지 공부를 했던 고시생들의 노력은 각자 소중하고 나름대로 치열했을 것이다. 그들의 부담감을 내가 감히 이야기할 순 없지만,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3번의 수능을 보고 시험에선 정말 손을 뗐다 ㅋㅋ 1년에 1 트라이 시험은 정말 무서워서 도망간 거 맞다! 그래서 도전하는 사람들 모두가 존경스럽다. 미국 SAT나 기타 시험들은 1년에 기회가 많다던데 우리나라는 정말 잔인한 것 같다.(GO TO HELL!!!)
물론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전제하고 쓴 글이다. 노력은 필수이며, '운'은 부차적인 요소로 생각하는 게 현실에 도움이 될 것이다. '노력'도 안 하고 '운'만 바라는 것은 순전히 도둑놈 심보!!! ㅋㅋ 끄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