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방향성
전형적인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자라난 학생들의 공부 방식은 다음과 같다. 탄탄한 기본기(?) 쌓기, 한 명의 수업자로부터 듣는 일방적 강의, 틀에 맞춰진 교과 커리큘럼. 특성화 고등학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느 지역에 있든지 상관없이 비슷한 교육을 받으며 학창 시절을 보낸다. 우리는 어른들에게 그렇게 배워왔고 우리도 크면 후배 혹은 아이들을 그렇게 가르치려 한다.
오늘은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고, 대학생이 된 이후 '우리는 어떻게 공부해야할까'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이번 주에 개강을 했기도 했고 고등학교로부터 갓 졸업한 새내기들도 많을 것이니 나의 이러한 글이 조금이라도 학업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써 보겠다. 정답은 아니기에 내 이야기도 무시해도 좋다.
먼저 극단적으로 이야기를 해보자면 우리는 이전까지 배워온 공부법 혹은 공부 과정을 싹 잊는 것이 나을 것이다. 특히 대학 공부부터는 처음부터 기본기를 열심히 쌓기 위한 또는 완벽해지기 위한 공부 스타일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입시 때부터 많은 부모님 혹은 선생님으로부터 위와 같은 공부법을 강요받아왔다. 물론 어느 정도의 보편적 공부 수준의 향상을 위해서 이 방법은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수분해도 모르는데 4차 방정식을 풀어보라고 하는 것은 파도가 치는 곳에 모래성을 쌓으라고 하는 것이랑 비슷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운이 좋게 부서지지 않는 모래성을 만들었다면 그 모래성은 어느 성보다 단단한 성일 것이지만...
미적분을 공부하기 위해선 수학 1,2를 1학년 때 미리 공부를 해야 한다. 초등학교 1,2,3,4,5, 6학년 중학교 1,2, 3학년 고등학교 1,2,3학년 때 배워야 하는 공부 과목들이 자동차 프레임처럼 완벽하게 짜여 있다. 부모님 혹은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자신 수준의 학년 과목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보고는 '지금 이러는데 나중에 3학년 과목은 어떻게 공부할 거니?'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악명 높은 '선행 학습'을 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여러 경험들을 해보면서도 느꼈지만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나는 고등학교까지의 공부법이 가장 후진적인 공부법이라는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내 이야기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3년 물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리를 공부하면서 수학이 자주 사용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수학도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게 무슨 일... 수학에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나도 많았다. 미적분학, 선형대수학만 하더라도 공부할 거리가 차고 넘쳤다. 나는 그 당시까지만 해도 '기본기'를 너무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학생이었다. 기본기를 (현실엔 절대 존재하지 않는)'완벽'하게 길러내고 싶었기에 기본기 공부에 많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개념 정리, 단어 분석, 인터넷 강의 반복 학습, 기본기 교재 회독 등. 고등학교 내 주변 친구들만 하더라도 다 그렇게 공부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전교 1등도 그랬다.
고등학교 때 까진 이러한 공부법이 어느 정도 성적을 및 원하는 대학을 갈 수 있는 확률을 높여줄 수는 있겠지만 대학에서부턴 그러한 공부는 중요하지 않다. '기본기'에 대한 집착, '완벽'에 대한 집착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초적인 것을 완벽하게 혹은 제대로 해놓지 않으면 이후 어려운 것들은 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 이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기초적인 것'은 아주 기준이 낮은 정도일 뿐이다. 젓가락질을 할 때 이상하게 하는 것에 대한 우리나라의 '후진국'다운 생각은 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젓가락질의 '목적'은 음식을 들어서 먹기 위함이다. 나는 젓가락을 잘하고 못하고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젓가락 질을 잘하든 못하든 그 사람이 편한 방식으로 먹으면 되는 것이지 젓가락질의 '기본기'란 없는 것이다. 약국에 가보면 에디슨 젓가락, 뽀로로 젓가락들을 팔며 젓가락 질을 의도적으로 틀에 끼워 맞추려는 물품들이 널려있다. 누구 입장에선 이상한 젓가락질이 비호감을 사는 행위로 비칠 수 있지만 젓가락질을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음식을 먹기 위함인가 아니면 이쁘게 젓가락질을 하기 위함인가? (나는 젓가락질로 지적받은 적은 없었다ㅋㅋ)
위에서 말한 물리 공부로 다시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다. 물리 공부를 하면서 수학을 공부하였고 나중에는 오히려 물리보다 수학에 집착을 하게 되었다. 수학을 잘 모르면 물리도 잘 못할 것 같았다. 제대로 모르는 수학 내용이 태반이며 공부를 해야 할 게 너무너무 너무나도 많았다. 미적분학, 선형대수학만 공부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도 기본기가 필요했고 그 기본적인 내용들 안에도 기본기가 필요했다. 체, 힐베르트 공간, 집합, 부분공간, 무한의 개념과 정의 등등. 미분 적분뿐만 아니라 더 기본적인 내용들이 차고 넘쳤다. 그것들을 공부하기 시작했지만 벅차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의 지능 혹은 능력 부족일 수 있다. 그러나 중간에 문득 든 생각은 '내가 지금 뭐를 위해 이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가?'였다.
미분과 적분을 하기 위해서 체, 힐베를트공간, 집합 등의 개념을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약간의 도움이 될 뿐이지 그것들을 굳이 알 필요는 없다. 수학도 마찬가지였다. 물리를 하기 위해선 수학을 '제대로' 공부할 필요는 없다. 알고 있으면 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내가 지금 물리 공부를 하기 위해 수학을 공부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수학을 공부하는 것인지 구분하는 능력이다. 수학과 학생들은 그런 고민들을 하면 되지만 물리학과 학생들은 그럴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물리'다.
이것에 대한 고민을 약 1년 정도 하며 나의 기존의 공부법 혹은 공부 습관들을 바꿔온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인생 가치관과 습관까지도 말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뭘 하려고 이것을 하고 있으며 이것에 이렇게 큰 시간을 투자하는 게 맞을까'다. 나는 물리 공부를 위한 수학 집착으로 물리 공부보다 수학 공부에 약 70%의 시간을 썼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물리보다 수학을 잘해져서 기분이 좋나? 그것도 아니다. 나는 물리를 공부하려고 했지 수학을 공부하려고 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의 공부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전 프로젝트 진행, 더 높은 레벨의 공부를 먼저. 위와 같이 실전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부족한 점이 보일 것이다. 부족한 기본기 말이다. 기본기는 그렇게 쌓아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며 공부의 목적을 명확하게 심어줄 것이다. 기본기만을 쌓아봤자 본인이 장기적인 목표 혹은 계획이 없는 기본기 쌓기는 (어느 정도 도움은 되겠지만) 효율이 꽝일 것이다. 요즘 시대에는 학문이 너무나도 발전하여 공부라는 것에 기본 혹은 기본기는 사라진 지 오래라고 생각한다.
19세기에는 최신전자기학을 공부하기 위해선 고전역학 정도만 알아도 충분했다. 20세기의 양자역학을 공부하기 위해선 고전역학뿐만 아니라 전자기학, 고급 수학 등을 알아야 한다. 인류 지식의 축적으로 알아야 할게 너무나도 많아졌다. 이전에는 기본기를 탄탄하게 쌓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기본기를 쌓다가 방향을 잃기가 너무나도 쉬워졌다. 간단한 비유를 들자면 옛날에는 10이 최고의 숫자였기 때문에 1부터 9까지 차근차근 기본기를 쌓아나가는 것이 효율적이었으며 1~9까지 잘 알아야 10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10이 아닌 100이 최고 숫자가 되었으며 이제는 궁서체 100, 고딕체 100, 필기체 100 등 다양한 100들이 생겨났다. 100에 가기 위해 1부터 차근차근 공부를 해 나가는 것은 엄청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이상 우리를 지치게 만들 뿐이며 공부에서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이것에 대한 예시로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있다. 대부분의 문과생뿐만 아니라 많은 이과생들도 '물리'를 싫어한다.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재미없는 수학에 너무 많은 심혈을 기울이는 교과 과정과 목적성 없는 수학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 가기 위해 수학을 공부하지 만약 수학이 선택과목이었으면 대부분의 수험생들은 수학에서 탈출했을 것이다. 물리 공부엔 수학이 필요하다. 물리를 공부하면서 필요한 수학을 공부하는 식의 방식이었다면 많은 학생들이 수학도 좋아했을 것이고 물리도 좋아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수학이 너무나도 재미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머지 '물리는 수학이잖아'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물리를 배척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랬다. 물리는 재미없고 이과생들도 기피하는 과목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내가 물리를 전공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물리에 관심이 있게 된 이유는 과학이 재밌었고 물리를 '먼저' 공부했기 때문이다. 물리학과 복수전공을 준비하고 있을 때도 물리학 강의들을 먼저 들었지 물리에 수학이 많이 나온다고 하여 수학 강의를 듣거나 수학을 먼저 공부하려고 하지 않았다. 수학을 먼저 공부했다면 물리가 재미없었을 것이다.
'주객전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파이썬을 공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파이썬이 쉬운 코딩 언어라길래 무턱대고 배우기 시작했다. 재미가 너무나도 없었다. 결국 프로그래밍 강의도 듣고 복습도 하였지만 남는 게 없었다. 내가 이 언어를 왜 배운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알고 보니 애초부터 나의 배움 방향성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할지 예를 들어, 주가 예측 모델을 만들지 게임을 만들지 메타버스 플랫폼을 만들지 미리 목표를 정하고 필요한 파이썬 공부를 했다면 10억 배는 더 재밌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 목적 없이 기본기만 쌓으려고 하다 보니 이도저도 안 된 것이다. (하나의 문법을 공부해 놓으니 다른 문법 습득에 있어 조금은 수월했다는 장점은 있었다.)
글을 정리해 보자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명확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처음부터 '기본기' 공부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기본기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때그때마다 필요한 기본기 내용을 끼워 넣는 식의 공부가 오히려 더 효율적이며 그것이 기억에 더 오래 남을 것이다. 완벽에 대한 집착, 제대로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그냥 어려운 것도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전에도 한 번 글에 썼던 것 같은 '리처드 파인만' 교수님의 재미난 일화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겠다. 파인만이 5살 때 사촌 형이 듣는 수학 과외 수업을 옆에서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그때 형은 x+5=12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파인만은 7이라고 자연스럽게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사촌 형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며 x+5=12에서 5를 우변으로 이항 하여 x=12-5, x=7 이렇게 답을 도출했다고 한다. 파인만이 말하길 사촌형은 대 代 수학의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당신은 여기서 무엇을 느꼈는가. 당신은 직관적으로 바로 x=7을 도출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정해진 커리큘럼, 선생님의 가르침 방식대로) 우변으로 이항 해서 x=7을 도출하는 사람인가. 대수학은 단연 전자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후자와 같은 가르침을 받아왔으며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전부일까?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늘 고민을 해봐야 한다. 이는 공부법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영을 하려면 일단 깊지 않더라도 물에 뛰어드는 것이 낫다. 수영하는 법을 인터넷에 찾아보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주변사람들의 조언을 듣는 것보다 말이다. 기본기가 없어도 그냥 하다보면 는다. 그게 기본기다. 노래를 하기 위해서 발성연습을 할 필요가 없다. 기본기가 없어도 노래는 그냥 부르면 되고 들었을 때 좋으면 된다. 그냥 쉽든 어렵든 불가능하든 뭐든 하면 된다.